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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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써내려가서, 조금은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책.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해서 집어드는 에세이는
왠만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제목 <보통의 존재>는 우습게도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리게 만들어주었고,
그러다가 읽으면서 내내 이 사람, 보통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까지였다. 

또, 어떻게 보면 가슴에 품어 안고 싶은 책인
<인간실격>과 조금은 닮아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그건 아마도
너무 솔직해서 알고 싶지 않은 치부를 슬쩍 엿보았다가
이내 내 것인냥,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라는 안도감을 들게 해주었기 때문이랄까. 

사랑과 자유의 존재, 그리고 언제고 떠나버릴 것만 같은 가벼움은
글로써 꽤나 무겁게 녹아들어있었고,
누군가에 대해 이토록 뜨겁게 끓어 안을 수 있는 기분은
잊고 지냈던 사람을 알았던 것 마냥 애틋함을 느낄 수 있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연애의 풍경]

"맞아, 그때도 그랬었어..."
우리는 서로에 대한 환희에 들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
같은 서울 안에 있는 곳이 아니라 대구까지 운전을 해서 너를 데리러갔었고
동생과 함께 만난 것은 만난 게 아니라며
이미 만났던 날 밤 둘이 다시 만나서는 기쁨과 사랑으로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 채 마주잡은 두 손을 놓을 줄 몰랐었지.

"맞아, 그때 그 사람도 그랬었어..."

너는 집에 다 도착해놓고는 내가 보고 싶다며
다시 학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었지.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간은 단 십 분.
너는 그 십 분을 위해 같은 곳을 두 번이나 왕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었어. 

"귀찮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니, 전혀 조금도 귀찮지 않아."

너는 웃으며 말했지. 그리고 그 웃음을 보며 나는 전율했다.
예전 누군가에게서 보았던 바로 그 표정이었거든.

난 여자가 사랑에 완벽하게 빠졌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너무나 충만해서, 기쁨에 겨워 눈은 반쯤 감긴 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누군가를 한없이 바라보는 바로 그 표정.

'그래, 모든 것이 예전에 봤던 장면이야...'

나를 위해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고
시장에 들러 내게 필요한 것들을 대신 사다주던 것,
낙산의 붉은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굳게 다짐하던 일,
더없는 사랑을 느끼고, 마음이 아플 정도로 애틋함을 느끼던 이 모든 것들이
다 예전에 경험했던 일들이었어. 그리고 난 그것들의 결말도 알고 있지. 

순간을 즐기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사랑한다.
우리는 반드시 헤어질 테지만 내 일생의 연인은 바로 네가 될 거야.

 

 

+
영화의 결말을 알고 싶지 않아
정말 보고 싶은 영화의 예고편조차 보지 않고,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한다, 나는.
그리고 책도 마찬가지로 읽고 싶었던 책은 훑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읽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책의 단편 하나조차도 노출시키지 않고, 읽어봐, 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단편을 써놓는 이유는 정말이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편으로 인해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싶어진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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