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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이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결국은 누구에게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모든 감정이 쏟아진 하나의 결정체임을 보여주게 된다. 이 말 \조차도 어떤 이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지만, 반대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한낯 지저분한 쓰레기만큼도 감정적인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다양하다. 그래, 모든 일은 다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자아가 형성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간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사랑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약혼녀 시벨, 그리고 갑자기 거리의 상점에서 만나게 된 먼 친척 퓌순. 그녀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감정의 혼란을 그리고 있음과 동시에 오르한 파묵은 ‘순수 박물관’이라는 타이틀 아래 관람객들, 즉 독자와 함께 호흡한다. 지나온 시간 동안 갑자기 주머니 깊숙이 훔치듯 간직해버린 퓌순과의 물건들, 그녀를 맡을 수 있는 흔적의 물건들을 전시하면서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글로써 그 사랑이라는 탈을 쓴 불륜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만 말하고 싶은 건, 반지를 꼈다고 해서, 결혼을 했다고 해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속해져 있고 가질 수 있고 그리고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지나치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고 그에 따른 대부분의 규제와 감정적인 절제를 행해야 하는 뇌가 커버린 어른으로서는 되도록 피해야할 일이겠지만, 단 한 번의 사랑,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감이 있는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마 수만번 고민을 하고 그로 인해 결정지어진 벼랑 끝에 섰을 때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아주 반의적이고 치사하게도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돌을 던진다 해도, 이전에 사랑했던 시벨에게 미안하고 사죄할 수 있을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나’라는 존재 자체를 힘껏 던져 한 번에 다 빨아들여질만한 흡입력을 가지고 감정적으로의 절제가 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삶을 살면서 한 번은 미쳐볼만한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고백을 하자면.
다소 짧은 단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그에 따른 짤막한 제목들을 가지고 이어지는 이 책의 묘미는 앞서 말했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와 독자의 소통에 있다. 공감과 반감. 그 둘의 몫은 각자의 선택이며 누구도 강요할 수가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여 모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것은 확연하게 펼쳐진 봄같이 따뜻한 일이지만 동시에 다분히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했던 기억들을 찾아가는 과정, 떠나가 버린 사람을 그리며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급하게 이어나가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과거의 사랑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아마, 삶이 끝날 때까지는 잊었다 해도 뇌의 언저리에 조그만 먼지처럼 들러붙어 끊임없이 자극할 것이다.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한없이 마지막 미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잊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잊을 수 있다고 하는 것 또한 욕심이다.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지나간 그 삶의 끝에는 다 누군가의 손길이 거치고 그 또는 그녀와의 추억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드는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