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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갑작스런 사고,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사랑. 언제나 인생은 극과 극인걸까. 그리고 나의 과거는, 아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한 내 마음의 움직임은 어딜 향하고 있어야 했을까.
온몸이 화상을 입었고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들 동안에 찾아온 마리안네 엥겔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에 있었던,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고 싶지 않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 하지만 들을수록 매력적인 그 이야기는 나와 엥겔 사이의 과거일에 대한 바탕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사고로 인해 병원을 나가자마자 내가 할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는 한가지는 자살이다. 정말 잔인하게 극적으로 죽어버리는 방법. 온종일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궁리뿐이다. 한때 정말 잘나가던 포르노 배우로서, 직업적으로 상당한 만족과 외모에 대한 자신감으로 자만해 있던 나에게 닥쳐온 시련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는 죽으려 한다.
하지만, 엥겔은 그런 나를 파악하고 슬며시 다가와 다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퇴원하고는 자신의 집에서 살 것이라고 한다. 선택도 없이 그저 그럴 것이라고 말해버린다. 그러면서 듣게 되는 그 이야기는 전생에 자기와 내가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으며 과거를 함께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믿지 못한다기 보다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사실이라면서 말해주니까? 아니다.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진심 때문이다. 머릿속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게 사랑이었다면, 아마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안네 엥겔은 결국은 가버렸고, 나는 혼자 남았다. 병원에서 궁리했던 자살은 당연히 없던 일로 되어버렸고 이제는 온몸의 화상이 점점 나아져 나의 피부로 돌아온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일을 겪어버리고 난 후의 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억속의 모든 일들을 안고 살기에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따르기에는 나의 뇌가 너무 작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 세상.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그 독특한 사건 속에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 치료되는 몸, 그리고 치유되고 있는 마음.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과 사랑을 쏟아부으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고통 속 절망 끝으로 내던져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행복을 기대하며 살 수 있다는 희망. 그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멀리할 수도 있었다.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고 덮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이야기 즉, 마리안네 엥겔이 들려주는 약간은 동화같은 이야기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그 끝의 둘의 사랑에 연결되어지는 플롯은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가야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