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써도 평가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공감을 일으키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아무런 느낌이 일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저 죽은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그만큼 소통이 존재하는 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코메티의 작품에 관심이 간다. 장 주네라는 파란만장한 삶을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평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희곡 작가로부터의 자코메티와의 만남에 관한 글인 이 책은 나로서는 어쩌면 쉽게 읽힐지도 모르는 듯한 책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주 얇고 흰색의 여백이 간지러운 이 책을 읽는 내내 왜인지 사르트르의 <구토>에 대한 생각이 오버랩되곤 했는데 중반 이후 등장하는 진짜 사르트르의 대화에 적잖이 놀랐다. 장 주네, 자코메티, 그리고 사르트르. 서로 각별한 우정을 가지고 동시대에 살아갔던 예술가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다. 대단하고 느낄 수도 있는 그런 인물들끼리의 소통이 부러웠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선이 흐르듯 사람의 몸과 얼굴을 표현하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들락달락 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4년동안 써내려 간 글의 압축된 표현이다. 아틀리에란 무엇일까. 그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작품활동을 하는 공방에 불과하기도 하고 그저 화실일 수도 있지만 그 곳이 의미하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집합체. 우리는 예술작품 그 자체만이 아니고 예술가의 배경, 작품이 추구하는 의미 등 그 외의 것들로 평가할 때가 많다. 그저 유명하지 않아도 작품 자체만으로 뛰어나다면 그만일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의 예술보는 눈을 탓한다. 감흥이 일지 않아도 유명한 작품이라면 우선 찾고 보게 되는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사물을 고독하게 바라다보고, 그 자체는 꼭 고독하고 홀로 있어야만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코메티의 사상이 마음에 든다. 그저 내뱉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사물에 있어서 외적인 것을 모두 배제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전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어느새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게 나이면서 우리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끼리의 만남이 특별한 것은, 그것도 자코메티와 장 주네의 만남이 새로웠던 것은 흘려보낼 수 있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글로 써내려갔고, 그 이 전에 자코메티의 작품이 장 주네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호작용을 통한 결과물로서의 책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그 특별한 것이 이렇게 소소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 의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표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쉬운 말로서 대비적으로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비록 거창하진 않더라도 자코메티의 느낌과 장 주네가 표현한 둘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하물며 사소한 사물 하나를 바라볼 때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비추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