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나의 책읽기는 결국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에 남는 게 없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의 공허함만이 가득해져버렸다는 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아닌 페미니스트이다. 특히나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고 나도 느끼고 있지만, 아직도 사소한 것들에서 느끼게 되는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흐르며 느껴지는 건, 여자여서 피해를 본다는 느낌이 아닌 여자니까 이렇게 대우를 받는거야, 라는 합리화가 돌아오는 때가 가끔 있기도 하다. 가령 여자와 남자 사이의 차이점은 명확한 것이고 그로 인해서 부당한 대우는 말이 되지 않겠지만, 차이가 있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결과까지 비난하고 무조건 떼들어 따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덴의 악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페이 웰던의 소설이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꽤나 유명한 책인가보다. 누가보아도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루스라는 여자의 이야기. 하지만 계속해서 시점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는 탓에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 조차도 작가가 의도했던 거라 여겨질만큼. 루스는 루스가 아니었다. 폴리 패치, 그리고 마를린 헌터 등 이리저리 이름을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루스는 어쩌면 내가 될 수 있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 루스는 독립적인 부부생활을 원하던 남편 보보의 외도, 그리고 그 외도를 일정부분 합의하고 묵인하고 있었지만, "악녀"라 소리치며 나가는 보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더 매력적이고 지적인 작가 메리 피셔에게로 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약간의 자신감도 없는 것 같은 루스는 그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아내를 버리고 떠난 보보에게, 그리고 그 매력적인 여자를 복수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무서운 복수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이 책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복수를 어떻게 하려는건지, 남편이 떠나버리고 그 남편을 빼앗은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느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의 무서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루스의 복수의 과정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왜 루스가 이렇게밖에 나올 수 없는지에 대한 이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복수를 하지 않고 그저 힘든 나날을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갑자기 더 좋은 남편이나 좋은 직장, 재산을 불려가며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스는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외모로부터 시작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가기만 한다. 나로서는 100% 이해가지 않는 것이지만, 어쨌든 루스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다. 행복은 어차피 자기만 알 수 있는 것이며 누가 뭐라 해도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니까.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아까도 말했듯이 허무함이다. 지나치게 루스만을 동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메리 피셔가 더 많이 불쌍해보이고 힘들어보이고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루스의 마지막 한마디가 나를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