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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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의 배경인 18세기 프랑스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있었다면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세실 볼랑주의 마음이라든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는 메르테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의 이야기가 조금 더 여유롭고 때로는 치명적이게 들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화려하고 그 속에서 들려지는 이야기들은 지금 현재의 시대와는 조금 동떨어진 것으로 분류되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지금까지도 읽혀지고 관심을 받게 되는 건 아무래도 동시대를 초월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 쓰여져 있다. 세실 볼랑주가 소피 카르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메르테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이 주고 받는 편지. 물론 중간에 생략된 편지들이 간간히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에는 이만한 소재가 없지 싶다. 남들이 주고 받는 편지를 읽고 있는 짜릿함. 직접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어쩌면 더욱더 직접직이고 비밀스러운 소재, 편지. 오늘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친구의 입술보다는 일기장에 적혀진 이야기와 느낌을 몰래 들춰보는 게 나쁘다는 의미를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는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책은 읽는 내내 약간은 찝찝하기도 했고 편지를 읽는다는 약간은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영화 <스캔들>의 원작이라는 이 책.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처음 1부는 너무 느리게 진척되었고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발몽 자작이 은밀히 주고 받는 편지들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 <스캔들>의 시나리오와 책의 내용이 오버랩되기 시작했고, 이제 이들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지금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재미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대, 즉 희대의 바람둥이라 여겨지는 발몽 자작에게 메르테유 부인은 복수를 꿈꾸며 볼랑주 부인의 딸인 세실을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사람의 욕심이란, 그리고 복수라는 것은 어느 면에서 정당화 될 수가 있을까. 그저 그 의미로서 이해되어야만 마땅한 것인가. 그렇지만 욕심과 복수라는 것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끝이 훤히 보이게 만드는 그런 것들로 치부되어버린다.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이라면 정말 다행이라 생각이 될 정도로. 발몽 자작은 정숙하기로 소문난 트루벨 부인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으로, 메르테유 부인은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하에 그 둘은 힘을 합쳐 점점 더 다가가지만 그 끝은 누가보아도 뻔한 그런 불행한 것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복수를 이루게 된 메르테유 부인. 그 복수의 희생자인 트루벨 부인과 세실 볼랑주. 어쩌면 이 둘은 결국에 희생자였을지 몰라도 속내를 들춰보면 그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시대야 자기가 하고 싶고 느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하게 되지만 18세기에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표현이 지금보다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제대로 이야기 하기 힘든 '성'에 대한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대담하게 쓰여진 책, 그리고 그 책 속에서 더 대담한 일들을 하고 있는 메르테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은 어쩌면 너무 솔직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겉으로는 아닌 척 뒤로 슬슬 빼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결국에는 모두 파국으로 치닫고 불행한 것으로 일들이 끝나버렸을지라도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자작은 솔직했다는 것이다. 비록 악역으로 남들을 불행으로 내몰았을지라도 독자의 눈에 한가닥 희망으로 빛나게 보이는 건 그들의 솔직함이자 동시에 자신감이며 당당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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