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두 번 째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아내, 니콜 크라우스. 미국이 주목하고 있는 작가. 그녀의 소설은 우연한 기회에 읽을 수 있었는데 어쩌면 운명적으로 나를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독창적이라는 말이 이토록 적절할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독창적인 동시에 약간은 복잡하기도 하다. 플롯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텍스트의 복선을 찾아가면서 읽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작가는 나를 테스트하는지 자꾸만 새로운 이야기들을 연관성이라곤 없는 것처럼 늘어놓았고 나는 어지러웠다. 그러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갖가지 이야기의 이어짐, 연속성은 나를 놀랍고 허탈한 웃음을 짓게, 감동적이게 만들어주었다.

3가지 이야기. 현재, 레오 거스키의 삶. 그리고 레오 거스키의 친구 즈비 리트비노프의 과거의 삶. 마지막으로 알마 싱어라는 여자 아이가 <사랑의 역사>의 여주인공이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알마'라는 것을 알고 그에 관한 것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 그 세 가지 이야기가 이리저리 뒤섞여있고 각각 개별적인 옴니버스 형식을 따고 있는 것 같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이어지게 되는 이야기. 텍스트 도처에 깔려있는 복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이 책.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하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사랑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부인에 대한 사랑을 바친 <사랑의 역사>. 그리고 그 책의 주인공 '알마'가 누군지를 찾아가게 되는 어린 알마 싱어. 또, 로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되돌리기 힘든 일을 하게 되는 즈비 리트비노프. 이 모든 사람들, 관계들이 얽혀 있지만 그 일 모두는 사랑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서로 독립적인 듯 하지만 조금씩 그 세계들을 넘나들고 있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로써 사랑을 표현하고 그 글을 통해서 사랑을 더 멀리 넓게 움직이게 하고 슬며시 그 속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 그 모든 복합과정을 아우르는 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세대, 나이, 지역을 불문하고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것들을 해결해나가든지 또는 유쾌한 유머를 퍼뜨리는 소설이 아니다. 사건이 있었고 그 과거를 되짚어나간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더 깊게 자유롭게 파고들고 얄팍하기도 두텁기도 한 진실된 이야기들. 그 연속성에 재미가 있었다. 왜 이렇게 되지? 라는 물음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하나씩 나올 때의 느낌. 그리고 이 모든 텍스트들을 쥐고 흔드는 듯한 작가의 대단한 글솜씨. 여유로웠고 흐르는 듯 잔잔했지만 그 중간 중간에는 힘이 있었고 읽는 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사랑의 역사는 그랬다.

어쩌면 이 책의 줄거리를 죄다 늘어놓고 싶은 느낌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손에 쥐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한 얼굴로 시작해서 이야기가 끝나면 책을 탁, 덮고 가슴속에 움켜쥐는 그러한 책이다. 직접 느껴보아야 하고 <사랑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들어야 한다. 아주 조심스럽고 깊게 진실된 마음으로.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다. 단지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머리를 통해서가 아닌, 텍스트를 읽으며 바로 가슴속에 묻어버린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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