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의 소중한 어린시절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사탕가게.... 

아! 하고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혹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단편이 맞나, 하고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는 아렷한 기억이 맴돌고 있던 중이었다. 교과서에서 읽었던 사탕가게에 관한 기억에 대해서. 어쩌면 그 이야기를 나는 몇 달전까지도 새기고 있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다시 읽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나에게 되돌아왔다, 행복하고 짜릿했던 그 아이의 이야기 속으로. 황홀했던 나의 추억까지도 되새길 수 있는 기회 속으로.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가던 그 사탕가게. 그리고 스스로 사탕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간 그 가게의 할아버지에게 내미는 체리 씨. 할아버지는 그 체리 씨를 받아 들고는 화는 내지 않고, 오히려 돈이 남는 다면서 아이에게 잔돈을 거슬러 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물고기를 파는 가게를 차리게 된다. 아이 두 명이 와서 내미는 아주 적은 돈. 그리고 갑자기 풍겨오는 사탕 내음. 폴은 자기가 어렸을 때 겪었던 그 모습을 꼬마 두 명에게 되돌려 준다.
나는 이 단편을 읽었을 당시를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읽었을 때의 감동과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깊어졌다. 단편 속의 '나'인 폴이 추억을 다시 겪는 과정과, 내가 나의 추억을 더듬는 과정이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이 책의 원제인 "Growing pains(성장통)". 나는 이 원래의 제목이 좋다. 하나하나의 단편은 작가가 책머리에서도 말했듯이 재미있는 것도 있고 재미없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작가가 실제로 겪고 느꼈던 특별한 기억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어렸을 적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닌, 자신의 길을 살겠다는 폴에 대한 여운을 깊게 남겨준 채로 끝나는 이야기.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의 추억을 되찾았다는 기쁨보다는 폴의 모험과 용기가 넘치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는 느낌을 받아서 행복했다. 어렸을 적에 겪기에는 참으로 특별한 기억도, 아니면 모든 또래의 아이들이 다 겪었을 평범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섞여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친 결과는 하나다. 그리고 폴이 겪은 어린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그가 내심 부러웠다. 사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에게도 이러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마을 뒷동산으로 친구들과 올라가서 놀았던 기억,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지겨울 정도로 돌고 돌아도 행복했던 기억, 가을이면 높은 장대를 치켜 올려 감을 따던 기억 등,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또, 어린 시절을 도시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실이 그렇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어린시절은 시골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그 곳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폴과 같은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에는 그만한 장소가 없다. 순수했던 시절과 맞먹는 자연, 그 속에는 추억이 생겨나고 그리고 그때가 아니면 겪지 못할 소중함이 담겨 있다.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돈의 가치를 모르고, 비싼 것만 바라보고 있는 내 주위의 조그만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슬픔이 스친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이 이야기의 주인공 폴과 같은 추억의 소중함. 그런 행복한 기억들. 읽는 내내 그러한 안타까움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 정도로 폴의 어린시절이 부러웠고, 내심 그 어린시절의 힘으로 이 작가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약간은 세월이 흘러서 어린 시절이 잊혀져가고 있는 어른들이 읽어도 좋다. 하지만, 폴의 어린시절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특히나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직접 자연을 느끼지 못하고 아파트와 자동차에만 치여 사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폴의 소중한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그럼, 삶이 약간은 더 풍요롭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