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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앤 스파이스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사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딱히 내용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Sugar and Spice"라는 이 책의 제목만을 계속 뇌리에 빙빙 돌리며 읽어서 그런 걸까. 왜인지 제목과는 맞지 않다고 느껴버렸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단편을 읽고 그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되뇌였을 때 이야기들을 다시 보게 된다. 내용이 와닿지 않다가도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나, 해설 등을 읽고나면 책이 다시 새롭게 와닿는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시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했다.
6개의 단편들, 한 3개까지 읽었을 때는 왜 이렇게 다 다른 내용이지? 했지만 결국은 알게 되었다. 6개의 단편 모두 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직업들이 아니라는 것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 예전의 미군 부대 앞에서 바(BAR)를 운영하는 할머니, 수도를 말끔히 청소해주는 사람 등. 그러한 노동의 댓가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작가.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비약해보면 사회에 소외된, 아니 누군가 사회에서 내쫓은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사회의 가장자리로 이동해 온 느낌의 사람들. 어쩌면 자신들이 일반적인 삶을 거부해버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면, 아릿하고 애절하고 소소하고 아름다운 느낌만을 떠올렸던 나에게 이들의 배경을 그리 걸맞지는 않았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지 않은 게 아니고, 그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과 모습들이 어쩌면 새로웠다고 할까.
작가인 '야마다 에이미'. 한창 일본소설에 관심이 있을 때,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유명 여성 작가들을 거론할 때 들어보았던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었다. 책을 읽고 난 후, 그녀의 전 작품들을 미리 읽어보았더라면 어쩌면 이 책이 조금 더 편하게 다가왔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해를 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6개의 단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2가지 있었다. <풍미절가>와 <춘면>이다.
<풍미절가>. 손자에게 'Lady first(레이디 퍼스트)'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할머니. 또 자기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그랜마'라고 부를 것을 강요하는 할머니. 또 언제나 자신이 일하는 주유소에, 옆좌석에는 아주 젊은 남자를 바꿔가며 주유하러 오는 그 할머니. 손자인 시로는 그런 할머니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할머니의 사고방식에 물들여져 있고 점점 닮아가지만 이야기의 끝으로 가자 그는 할머니를 닮아가는 게 아니었다. 닮아가려 하다가도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시로. 시로는 할머니를 겉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할머니가 시로에게 건네는 밀크 카라멜. 그리고 그 카라멜의 겉 포장지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풍미절가: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향이나 질감이 더없이 뛰어나다는 뜻"
<춘면>. 이야기의 내용이 그렇게 와닿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둘의 사랑이 왜 가능한지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그들에게 빠져버렸다. '나'인 쇼조는 같은 동아리의 '야오이'를 좋아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난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오게 되는 이야기. 자신의 아버지와 '야오이'가 결혼한다는 소리. 쇼조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리고 화장일을 하는 아버지를 어렸을 때부터 창피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고 햇지만, 결국은 아버지를 인정한 적이 없었고, 자기가 좋아했던 야오이와 결혼을 하고, 그리고 서로 좋아하는 모습을 자신의 눈앞에서 보았을 때 결국은 아버지를 겉으로까지 내치게 된다. 그런 쇼조에게 동생인 가에는 이런 말을 한다. 아버지는 화장일을 해서 죽음이라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야오이는 심장병을 가지고 있어서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그래서 그 둘이 죽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거라고. 여생을 나누는 거라고.
어쩌면 모두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는 모를지 모른다. 그래, 그 둘의 사랑이라는 것은 어쨋든 그 둘 밖에 모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어쩌면 틀린 것일 수도 정확히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둘이 아니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위한 것이지 그 둘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입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하게 단정지어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가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상관이 없다. 이해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들의 아니니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이해하려 해도, 나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에 피어나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애틋한 그 감정은 그들밖에 모르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소중한 게 아닐까. 둘만이 나눌 수 있는 은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