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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워터. 파릇한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나가는 수영장, 어렸을 때 나도 수영선수를 해서일까. 그들만큼의 청춘이 시작될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여서 이토록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의 감정이 일지는 않지만 수영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앞서나가기 위해, 그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 속에 첨벙, 하고 들어갈 때의 환희가 더 와닿는다. 읽는 내내 청명함이 더욱 앞섰다.
사실, 책의 두께를 보고는, 그저 가벼운 단편정도일꺼라 생각을 했다. 아니, 역자후기를 읽어보기 전에는 소설이 왜이렇게 짧나, 라는 생각을 하며 실망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는 게 더 맞을 듯 하다. 그치만 소설의 첫 장면부터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느낌들, 간간히 독특한 색채로 그려져 있는 삽화들이 나를 뒤흔들었다. <워터보이즈>. 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미루고 미뤘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더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잠깐의 스틸에서 보았던 워터보이즈, 영화속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은, 절경 속을 지나는 줄도 모르고 같이 걷는 동료들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행자들로, 우리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 속에 둘러싸여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란 건 그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길동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p.11
아련하게 드는 생각중에서, 길동무를 한 번 되돌아본다.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자는 누구이며 과거의 사람은 누굴까. 나에게도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길동무가 있는가, 있었던가. 라는 신선한 충격을 껴안으면서. 그들, 료운, 다쿠지, 게이치로, 다스케. 소설을 읽으면서도 주인공 이름은 눈여겨 보지 않는 나에게, 이들의 이름은 이토록 잘 기억이 난다. 그만큰, 책을 읽는 시간이 짧았음에도 강한 인상이 남아있다는 뜻이 아닐까.
배경은 수영장에서, 그리고 수영시합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는, 우승을 하는 것에 두고 있지만 이건 성장소설이다. 비릿하게, 꺼림칙하게도 흘러갈 수 있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만큼 소중한 것이 없었다는 걸 다시끔 느끼게 해주는. 반복해서 말해도 부담이 없는 청명함, 상쾌함이라는 느낌이 잔뜩 가미된 그러한 성장소설.
운전석으로 되돌아온 아저씨가 시동을 걸면서, "이봐, 학생. 지금부터 10년 후에 자네가 돌아오고 싶어할 자리는 분명 이 버스 안일 거야. 잘 한번 둘러보고 외워두라고. 자넨 지금, 먼 훗날 자신이 돌아오고 싶어할 장소에 있는 거야."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p.88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은 이런 것일까. 나는 알 수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곳이 바로 그 버스 안일거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내가 다시 되돌아가고 싶던 때는 내가 사는 바로 지금 이 곳, 그리고 지금 시간 10시 3분일것이다. 아이러니하고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이 말이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본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간단한 문체, 소소한 장면 하나에서 오는 가슴의 뭉클거림이다. 그 느낌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 워터. 긴 문장의 끝을 덮었을 때의 뿌듯함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울렁거림을 동반한 설레임을 느끼게 해주는 요시다 슈이치의 문장들. 청명함의 끝에서 오는 그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한동안 이 느낌에 헤어나오지 못할 듯 하다. 가볍게 봤다가 제대로 당했다. 영화 <워터보이즈>를 보면 아무래도 그 아릿한 느낌이 더 지속될 듯 하다. 끊기고 싶지 않아서 재빨리 영화를 튼다. 조금 더, 조금 더 오래 이 느낌이 지속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