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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黑笑(흑소). 영화에서는 많이 접해보았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서. 흑소소설, 제목부터 무언가 꺼림칙하게 만드는, 그리고 표지 등장인물의 입꼬리를 보고있노라면 나도 살짝 그 표정을 따라하게 되는 이 소설.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흑소소설. 이야기의 내용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이 글들이 소설이 아니라는 표현에서였을까. 약간은 비약적인 상상을 하면서 읽게 된 소설 아닌 소설, 흑소소설.
어쩌면, 오쿠다 히데오의 <인더풀>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느낌상 <인더풀>은 희(喜)였다면, <흑소소설>은 노(怒)라고나 할까. 그러나 비슷하다고 말한 데에는 이 이유가 있겠다. 사회의 단면, 그리고 부조리를 꼬집어내는 이야기들. <인더풀>은 사회의 부조리를 웃음으로써 표현해내고, 이 소설은 그야말로 제대로 꼬집어낸다. 읽은 뒤 찝찝함을 그대로 안고가게끔. 그래서 블랙코미디라기보다는 씁쓸함이 더 잘 어울리겠다. 참 아이러니하다.
첫 번째로 나온 "최종심사". 누구나 이런 생각들을 대부분 하고 있지 않을까. 최종심사장에서, 수상을 원하는 사무카와. 속으로는 자만심에 가득차, 내가 상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겉으로는 쿨한척, 아니면 쑥스러운 척. 그리고 사무카와를 겉으로는 지지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이내 당연히 신인상을 못 받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편집장, 그리고 그 외 사람들. 내 멋대로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밖에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함께 사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굳이 그게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후회가 뒤따라오게 마련이니까. 첫 단편부터 제대로 씁쓸함을 보여준다. 단편이 끝날 때 즈음, 찝찝함에 몸서리처진다. 그리고 재빨리 다음 단편이 뒤따라온다, 좋지 않은 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단편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스토커 입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나에게는 그렇다.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통보를 한다. 헤어지자고. 그리고 남자는 생각한다. 왜 헤어지자고 했을까,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건 전화를 여자는 끊어버린다.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남자는 일주일 동안 여자에게 전화도, 집에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뒤 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사랑하는 거냐고 사랑하지 않는거냐고, 그리고 헤어지고 싶다는 거냐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거냐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거라면, 스토킹을 하라고. 여기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사실, 그 전의 단편들은 그저 찝찝함을 안겨주는 데 반해서 이 단편에는 황당함이 묻어난다고 할까. 남자가 스토킹에 어설프자 여자는 남자에게 일일히 스토킹을 가르쳐주고 끝내는 쓰레기를 뒤지라고까지 한다. 그리고 쓰레기장에서 만나는 또 다른 스토커들. 생각만해도 아, 웃긴다.
이 외에도 신데렐라, 웃지 않는 호텔 직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신인상을 뽑기 위한 뒷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결같이 흑소를 날려주기에 적당하다. 지극히. 한번쯤 더 생각해봐야 할 사회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간단한 단편들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런 게 단편이 주는 매력이랄까. 장편의 구체적이고 세심한 이야기들을 단편적이고 간단한 메시지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 꽤나 매력적인 글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유쾌하다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은 어중간함이 아쉽기도 하다. 당연히 웃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지만 그 속에서 약간의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를 두어서였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은 건, 그리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내용에 기대기 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블랙 코미디, 라는 것은 그 뜻을 이해해야 훨씬 더 웃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이야기일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