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녀들, 자살하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은 <처녀들의 자살소동>이라는 영화 때문에 알게 됐다. 꽤나 나의 스타일과 비슷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영화를 언제 보지 미루고 있던 차에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러나 어쩌면 이 책을 적어도 2년 전에만 읽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몰려오더라. 단지 그 때 읽었다면 고등학생 시절인 나와 그리고 내가 무한하게 가지고 있던 자아에 대한 성찰, 부모님과의 갈등 등에 더 현명하게 또는 오히려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의미에서이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슬픔을 극복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지요." (p.123)
10대들이, 물론 나이가 더 들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감정. 슬픔. 그 슬펐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감정은 어느새 메말라버렸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정도는. 왜 그 때는 이 땅 위에는 나 혼자인 것 같고, 그리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닥치는 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뇌이고 절망하고 또 절망했었다. 이 소설속의 딸들, 리즈번가의 다섯 딸들 또한 그랬을까. 꼭, 나와 같았을까. 지붕 위로 올라가 비행을 하듯 떨어져 쇠창살에 꽂혀버린 서실리아. 그리고 남겨진 네 딸들의 이야기. 그치만 '자살'이라는 어쩌면 끔찍하고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이 단어를 작가는 물 흐르듯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써내려갔다. 그저 이 책의 소재를 잊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저 평범한 십대들의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듯이. 그래서일까. 소재는 한없이 무거운데 문장은 그저 흐르듯 읽혔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슬픔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서실리아의 죽음 뒤에 일어날 일들이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전까지는.
한 아이가 죽고,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 슬픔을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님과의 이해차이와 자신들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사회와 학교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아직 부모의 입장이 되보지 않은 나로서는 딸들에게 손을 드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부모들은 너무나도 유난스러웠다. 어쩌면 그 나이 때의 이러한 부모를 두었다면 극단적인 자살말고는 할 게 없었다는 트립의 말이 제대로 이해가는 부분이었다. 럭스의 초대(?)를 받아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다는 트립은 리즈번가의 집에 가게 된다. 숨막힐듯한 분위기. 그리고 TV에서 나오는 내용에 대한 알람같이 타이밍이 딱딱 맞는 웃음 소리.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느낌까지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단지 '자살'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지, 극적인 부분으로 나도 함께 달려가는 듯 한 리즈번가.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 때의 일은 그저 흘러가기 딱 좋은 유치한 스토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아무도 모른다. 지나가면 그 일들이 모두 종이의 재처럼 새카맣게 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그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아이러니. 그 누구도 이러한 시간들을 겪지 않은 이는 없으리라. 책을 덮은 후의 기분은 말 그대로 '먹먹함'이었다. 단지 침울하게, 무겁게만 쓰지 않은 작가의 문장력에 한없이 감사하면서. 문장마저 숨 막히게 써내려 갔다면 나도 그대로 책을 덮자마자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짚어 썼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잠만 자기를 원했을지도. 단지, 이러한 감정을 잊을 때까지만 자고 다시 "일어나겠"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살아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도와주는 애정어린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인생의 '벗'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의 슬픔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생각할 때, 나의 손을 이끌어줄 그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 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고민이 너무 많은 소년 소녀들, 아니면 그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이 읽어보면 좋지 않니한가.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속에서만이 아니라 겉으로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해도 속으로는 자신의 딸들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한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그 안타까움의 위로 등이 필요하다. 아무리 살아있어도 정신적으로 딸들은 이미 죽었다. 아, 사랑은, 그리고 관심은 말로써 표현해도 전해지기 어려운데 그것을 마음속으로만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이 제일 안타까웠던 부분이 아닐까. 새삼 나의, 내 일에 눈을 돌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