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 한 디자이너가 그린 파리지앵의 일상과 속살
이화열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영화 <비포 선 셋>에 나왔던 생미셸의 '셰익스피어 컴퍼니' 이곳은 헤밍웨이가 자주 이용했던 대여 책방이다.-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친구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1월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덜컥 나도 그 비행기에 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그렇게 1월 프랑스, 더불어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영국 여행이 결정됐다. 약 2주간의 여행, 그 여행에 들떠있는 즈음 이 책이 나에게로 왔다. 책을 읽는 동안 여행에 대한 기대가 오버랩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즈음의 이 사진을 보는 순간, 그래, 내가 곧 갈 수 있겠구나, 기다려지는 여행이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너무나도 와닿게 본 영화 <비포 선 라이즈>, 그리고 세느강이 배경이 된 <비포 선 셋>. 그리고 <비포 선 셋>의 첫 장면의 장소인 이 책방을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생각이 된다. 그런 감성에 젖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찬 기운이 팔에 어스르는 이 새벽, 책읽기를 끝마치기엔 가장 적당한 시간이 아닐까. 지나치게 분위기에 젖어 있는, 어쩌면 간절히 파리지앵(Parisiens)이 되고 싶은 내가 말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파리지앵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치만 책을 펴기 전까지 나는 어떤 내용과 사진들을 기대했던 것일까. 당연히 프랑스 여행이라는 목적에 적합한 그러한 류의 정보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지만 당연히 그런 내용의 책이 아니다. 아니다, 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대목이다. 언제나 꿈꾸어 온 나의 여행관이 있다. 멀리,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의 여행 중에서 내가 얻고 싶은 것, 보고 듣고 싶은 것은 유명한 관광지나 듬성듬성의 큰 그림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나는 그저 그 낯선 곳에 자그마한 집을 하나 얻어서 그 사람들을, 그 나라를, 심지어는 그 집의 화분 하나의 이름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정말 느끼고 싶을 뿐이다. 아직 꿈꾸어 온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29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내가 도달하려면 아직 7년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 때에 선택한 프랑스로의 행방. 그 속에서 얻은 파리지앵의 삶에 대한 관찰. 그 오랜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느끼고 익숙한 것이라 느껴질 즈음의 작가의 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파리지앵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지인들에 대한 찬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왜 프랑스의 유명 관광지에 대해서, 음식의 정보라든지 그 유명한 와인에 대한 왜 그 자세한 정보따위를 실어놓지를 않은거야! 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뒤져봐도 자세한 류의 정보 따위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치만 진작에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아서 일까. 배제하고 그것만을 본다면 100% 흡수되는 게 사람의 감성이다. 그 모든 자세한 것들을 제치고. 파리지앵의 삶만을 원했던 독자의 눈에는 그것들이 다 밉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파리지앵 중,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지독한 관찰의 결과를 그대로 써내려간 듯한 작가의 글 속에는 겉으로는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속으로 음미하다보면 그 파리지앵의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그대로가, 그 자체가 내가 원하는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속에서 이 책의 매력이 퍼지게 된다.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읽다보면 파리지앵의 삶 안에 내가 들어가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 

한 사람마다의 테마를 가지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펼치고, 간간히 나오는 파리의 사진들은 내가 꿈꿔가는 그 도시, 골목 그대로의 모습이다. 같은 대상을 보아도 사진의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 파리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그녀의 마음이 이 사진에서까지 보이는 것인가. 그렇게 감정이 사진을 통해서 전달된다. 보헤미안 느낌이 물씬 풍기는 파리지앵들의 삶. 그저 맹목적으로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삶의 자체가 되고 싶다. 그러나 되고 싶다는 것만으로 그 모든 게 익숙해지리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매너있는 행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사람과 매너 그 자체가 베어있는 사람은 다르다. 서서히 나의 몸 속에, 정신 속에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여유로운 그 생각들이 베어들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고민을 시작하려 하지만 이내 그만둔다. 아까도 말했듯이 되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기다려보자,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 책의 부제를 감히 달아본다면 '소소한 파리지앵 일상으로의 초대' 정도가 되겠다. 그만큼 소소하고 감성적이다. 어두움이 내려앉고 찬기운이 스산하게 부는 새벽, 스탠드의 어두운 노란색 조명을 받으며 푹신한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 이 책을 보자. 그게 내가 권하는 <파리지앵>을 읽고 느낄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아, 파리지앵. 감성에 충만한 이 글이 나의 느낌을 대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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