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天葬)
박하선 글, 사진 / 커뮤니케이션즈와우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의 어느 일요일 아침, '도전지구탐험대'에서 그들을 보았다. 시신의 뼈마디와 살점을 잘게 자르고 있는 천장사의 모습과 그것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배우 조재현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일요일 아침 서울의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늦은 아침을 차려 먹고, 지하철을 타고,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날 그 일요일에 그들이 찾아왔다.

작년 겨울에 이 책을 우연히 얻어 보게 되었다. 손에 먹이 묻어날 것 같은 검은색의 비릿한 책이다. 사진 속에 텔레비전 화면 속의 그 천장사가 여전히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첫장을 펼치니 한 면 가득 티벳의 하늘이 펼쳐진다. 광각렌즈를 사용한 듯, 한껏 늘어나 있는 하늘. 이 하늘로 죽은자들의 영혼이 올라가고 그들의 육신은 새들에게 보시되어 땅 위에 남긴 미련은 아낌없이 거두어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의 시선은 잠깐 그들이 살고 있는 티벳의 어느 마을을 부감법으로 비추어내고, 그리고 마을 사람의 얼굴로 옮겨간다.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사진이 천장 의식을 따라간다. 천장이 행해지기 전 사원에서 스님들이 행하는 포와 의식을 지나, 시신을 잘게 부수는 천장사의 의식이 행해진다. 사진 사이사이에 한두 장씩 끼워넣은 새까만 먹지, 하얀 여백이 마치 영화의 점프컷처럼 이 의식(儀式)의 흐름을 잘라내고, 다음에 펼쳐질 장면까지 걸렸을 시간의 흐름을 대신한다. 새까맣게 독수리떼가 뒤덮고 있는 사진을 넘어 독수리가 사라진 다음장을 펼치니 눈구멍과 뼈에 거죽이 약간 달라붙어 있는 시신이 나타난다. 서로 밀치며 부산하게 움직거렸을 독수리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비릿한 잉크 냄새는, 천장 의식에서 나고 있었을 피내음 같다.

숨막히는 천장 의식 사이사이에 놓인 작은 사진들의 배열은 사진가의 의도일까. 아니면 편집자의 배려일까. 독수리들이 파먹고 있는 시신의 사진 옆에, 언덕에 몸을 기대고 앉은 느긋한 표정의 유족이 있다. 시신을 수습하는 천장사의 흐릿한 모습을 뒤로 한 채, 정면을 쳐다보는 소녀와 눈이 마주친다. 혹시 나는 그들을 욕되게 하고 있는 걸까. 심호흡을 하고 다음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셀 수 없을 만큼 널려 있는 두개골들 뒤로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난다. 천장 의식이 끝났다. 다시 먹지 여백을 지나면, 살아 있는 그들의 사진이 한 장 한 장 놓여 있다. 천장사는 웃고 있고,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있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원하며 온몸을 던져 기도를 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 다시 아이를 낳고, 지게를 진 채 언덕을 오르는 사람은 내일도 지게를 질 것이다.

내가 여전히 일요일에 늦은 아침을 먹고, 친구와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서듯, 텔레비전 화면 속의 조재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 의식을 견디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여행 보고를 하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천장 의식을 가운데 두고 배열되어 있는 도입부의 마을 모습과 뒷장의 사람들 모습이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나고 반복된다. 마지막 페이지의 나무가 뿌리로는 땅과 만나고 가지로는 하늘과 만나는 것처럼.

이 책 <천장>은 살아서 노동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죽어서는 다시 하늘로 돌아갈 그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들 삶을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