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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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아이의 탄생에서부터 성숙할 때까지 여성으로서 가지는 성에 초점을 맞춘 소설로 파격적인 제목으로 유명세를 누렸던 책이기도 하다. 상당부분 솔직하고, 작가 개인의 경험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들여다볼 수 없을것만 같은 내면까지 묘사함으로서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 아닌가 의심케 하기까지 한다.


실은 제목이 너무 파격적이고 유명세를 톡톡히 누린 책이라 오히려 손이 안 갔었는데, 후속작인 '가족'을 읽고 그 솔직함과 거칠 것 없이 꿰뚫어 보는 시선에 반해서 이 책도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에세이집은 가족이 더 마음에 들지만, 이 책도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다.

 

o 소녀가 당한 강간은 세상과의 첫경험, 말하자면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강간을 섹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지금도 오해하듯이.

o 인도영화 <밴디트 퀸>을 만든 여성감독은 '성적자극을 전혀주지 않고 강간과 윤간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반장이었던 주인공이 강간을 당한 친구의 병문안을 가면서 상상했던 강간의 이미지가, 그 친구의 멍들고 부풀어올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얼굴을 보고서 깨지는 장면에서 나왔던 문구들이다.

 

실은 나도 강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폭력이라고 하면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거기에 성이 덧붙여지면, 어딘지 질척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생기게 된다. 길을 가다가 불량배에게 맞았다면 '큰일났네, 어디 부러진 곳은 없어?'가 되지만 길을 가던 여자가 불량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면 안됐다는 생각은 하지만, 어디 신체 일부분이 크게 다쳤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안 든다. 이를테면 다리가 부러졌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폭행이다. 성폭력에 있어 반항하는 여자를 조용히 만들기 위해 안면이나 약한 복부에 구타를 하는 것은 드물지도 않다. 그럼에도 어째서 그 상처를 떠올리지 못하고, 야릇한 상상을 하게 되는걸까. 그것도 같은 여자이면서도 말이다. 이러한 이면성에 대해 멋지게 폭로하고 있는 부분이다.

 

o 나의 건조함과 불감증은 이성이 욕망에게 승리했다는 유일한 징표였다.

 

억압받은 성으로 자라난 여성은 성에 대해 말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금기시되어온 면이 있다. 그 결과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성에 대해 굳게 쌓인 벽을 허물지 못하는 것이다.

 

o 일각수 이야기는 처녀 숭배와 순결 지상주의의 혐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설화일 뿐이다. 훗날 정직만을 미덕으로 삼는 고지식한 학자들은 끝내 일각수의 정체를 밝혀 환상을 박살내기를 서슴치 않았다. 고대 전도사들이 대륙을 오가며 선도를 하다가 문득 스치며 보았다는 일각수의 원형이 실제로는 아프리카의 코뿔소라는 것이다.

 

일각수의 기원을 이 책에서 처음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순결의 상징이자, 처녀의 무릎에만 머리를 베고 잠이 든다는 성스러운 일각수가 튼튼하다 못해 거대한 코뿔소였다니! 순결에 대한 사회적 강요와 역사적 전통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한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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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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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우리는 일생 동안 남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해왔어. 우리는 고독한 늑대만 보면 금방 사랑에 빠져버리지. 고독한 늑대가 방랑자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그를 유혹하고,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여 그가 방랑생활을 접도록 만들어버려.
하지만 정작 그가 정착을 결심하고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우리 집에서 밤을 지새고 나면 금방 싫증이 나지. 그가 곁에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어지는 거야. 사나운 늑대를 애완용 강아지로 만들어놓고 나면 그 강아지가 귀찮고 부담스러워지는 거야. 그래서 남자를 다시 쫓아내버리지."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中에서
 
 

표지도 이쁘장하고 얇은 책이라 가볍게 집었다가 폐부를 쑤셔대는 통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남의 얘기면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웃고 넘기겠는데, 내 문제를 직시하고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읽었다.

 

뭐라 정리를 해보고 싶어, 며칠 째 잡고 끄적거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쓰지를 못하겠다. 스스로 뭐라 말하지도 못하면서 한없이 추천만 하고 싶은 책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라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여자들 혹은 도대체 저 여자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남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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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2 - 7년 후 다시 만난 쉴라와 헤이든, 그리고...
토리 헤이든 지음, 이수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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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서 치료를 주제분야로 하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사람들의 상처를 더 민감하게 알아본다고.상처가 있는 사람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도와줄 수 있다고.
 
정말 그런걸까. 나는 상처 입은 사람을 알아보긴 하지만, 아는 척 하진 않는다.그들의 인생까지 끌어안고 싶지 않다.
 
사람의 상처란건 쉽게 아물지 않는다. 완치라는 것은 없다. 평생동안 끌어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뿐.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짊어질 각오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더욱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한 아이'란 이야기에.한 사람의 교사가 한 아이의 인생을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시켰는지.
그 기적에 나도 기대고 싶었다. 한 때의 만남으로도 인간은 누구나 달라질 수 있는 강한 존재라 믿고 싶었다.너무나도 극적인 기적에 들떴었다. 희망에 가득차서 그저, 기뻤다. 분노에 가득찬 아이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밝고 아름다운 아이로 변모하는 그 기적에.
 
그러나 '한 아이'의 후속편인 '한 아이 2'에 드러난 진실은 그 희망을 그대로 묻어버렸다.한 때의 꿈이 끝나고 다시 방치된 아이가 어떻게 비참하게 커가는지. 어떻게 다시 그 구렁텅이로 돌아갔는지. 그리고 자신을 사랑스러운 아이로 만들었던 선생님을 얼마나 원망하는지. 그들이 다시 빛나는 희망을 움켜지기 위해 얼마나 돌아가야 했고, 서로가 얼마나 상처받아야 했는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가벼움이란 없다.한 사람 한 사람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고, 우리의 인생도 무겁다.
 
나로서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주위를 둘러 볼 수도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걸까.
 
그건 앞으로 배우고, 느껴야 할 것이다.
한아이 1을 읽고 느꼈던 그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한아이 2를 읽고 느꼈던 좌절감과 거짓환상을 보게 했다는 분노들을 모두 끌어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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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훈구 지음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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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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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론과 그리고  휴즈맨들은 어릴 때 보았던 텔레비전 폭력의 양이 수년 심지어는 수십 년 후까지 그 사람들의 공격 수준에 영향을 줌을 밝혔다. 이 연구에서 피험자가 시청한 폭력의 양은 피험자들이 보았다고 보고한 프로그램과 이 프로그램들의 폭력점수(폭력장면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는가를 점수로 매긴)로 정의했다. 피험자들의 공격 수준은 학급 동료들이나 그들의 선생들이 매긴 행동점수로부터 얻었다. 이 두 가지 변인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본 결과, 정말로 상관이 있었다. 즉 어릴 때 매체 폭력을 많이 본 사람들일수록 어른이 되었을 때 공격 수준이 더 높았다. 게다가 이 관계의 강도는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매체 폭력의 영향이 시간이 갈수록 축적됨을 시사한다.
 
(중략)
 
폭력매체를 지속적으로 시청하는 것은 폭력과 그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정서적 민감도를 떨어뜨린다. 간단히 말해서, 수많은 살인과 싸움, 공격을 보게 되면 시청자들은 이러한 시청각 자료에 대해서 둔감하게 되고 정서적 반응을 더 적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생활에서의 공격도 보다 덜 해로운 것으로 보고 심지어, 피해자들이 상당한 아픔과 고통을 표시해도 그 피해자들을 덜 동정한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성폭력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본문에서
 
폭력성을 낮다고 해도, 그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성이 높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폭력성을 갈무리하는 방법을 알며,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폭력매체를 접했는가"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1.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라는 환경결정론 적인 입장은 문제가 있다.
 
같은 환경에 주어진다하더라도 사람은 모두 다른 행동을 한다.
그 이유를 그들은 다른 성장환경에서 찾는다. 만약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그 역시도 같이 행동했을거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적 요인 속에서 자극에 따라 이리저리 변화할 뿐인가.
 
문제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잘못이 마치 사회의 문제인양 두리뭉실 넘겨서는 안 된다.
폭력은 폭력을 행사한 자의 잘못이다. 폭력으로밖에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이 바로 잘못이다.
 
치장하지 마라.
그대의 나약함을 사회로 떠넘기지 마라.
 
그리고, 그 나약함에 동조해 범죄자를 상처입은 영혼으로 받들지 마라.
 
 
 
2.
 
범죄자에 대한 어설픈 연민보다 더 두려운 것은,
범죄자를 연민하는 것에서 비롯한 범죄 자체에 대한 둔감함이다.
 
더더욱 자극적이고, 절절한 사연이 없이는 그저 일상에 묻어나는 약간의 위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자연재해를 인정하듯, 교통사고를 인정하고, 그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인정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피해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피해자를 사회적인 본보기로 만들어 '언제 내가 그렇게 될 지 모르므로' 강해져야 한다고 우리를 채찍질한다.
 
또한 타인의 어려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도와주다간 나도 피해자가 될지도 몰라.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피해자가 잘못한 거야'의 사고까지 이어지게 되면, 우리 사회는 이미 도덕이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에 관한 토론을 볼 때 이런 말을 본 적이 없는가?
'여자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을 당하지'
'그 시간에 왜 그런 곳을 돌아다녔대?'
 
약하기 때문인가.
약한 자는 강자에 의해 짓밟히면서 그저 속으로 눈물이나 삼키며 살아야 하는가.
 
그대는, 그대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속으로 눈물만 삼키고 싶은가.
 
(얼마전에 한 여성의 자살 사건에서 어째서 피임을 하지 않았느냐의 논조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저 글이 더욱 와 닿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성폭력이란 범죄 자체에 대해 상당수준 용인하고 있었던 것 같다)
 
 
 
 
3.
 
'살인' 혹은 그 비슷한 범죄들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저변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갖가지 요소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때 부모님에 의한 학대, 가슴이 찡한 구구절절한 사연, 희망이 안 보이는 삶...
그 요소들에 정신을 뺏겨,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 연민이 가져오는 것은 범죄에 대한 용인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이한 마음.
 
그 마음이 당신 자신을 집어 삼킨다 해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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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에서 글쓰기의 혁신은 가능한가
김정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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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라 불리는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수많은 문서와 책, 정보자원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정보는 너무 많고, 그것을 읽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도 짧다. 필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든 독자에게 전하려고 온몸으로 외치고, 독자들은 자신의 흥미에 따라 필자를 선택하는 시대가 왔다.

 

학술논문은 아예 이런 시대적 조류를 무시하고, 이 책에서 표현한 바에 의하면 소위 과학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 서론을 쓰고, 서론 안에는 문제제기, 연구목적, 연구범위 등등을 줄줄이 나열한 글들을 보고 있자면 이 것이 이공계의 실험보고서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이 책에서는 과감히 그런 폐단을 꼬집고, 글쓰기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이론적이고 딱딱한 이야기 대신 구체적이고 눈앞에 보이는 흥미 있는 글을 쓰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그리고 쉽게 씀으로서 경질되어 버린 주제에 신선함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가 도입되어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 나온 ‘디지털 도서관 꿈인가, 광기인가, 현실인가’는 과연 신선했다. 현실의 문제에서 바짝 붙어서 쓴 글쓰기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흥미를 확실히 이끌어 낸 매력적인 책이었다.

 

이 책은 흔히들 말하는 ‘업계용어’를 타파하고 누구나가 접근할 수 있는, 그러나 깊이 있는 새로운 문헌정보학의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글쓰기의 문제에는 테마의 문제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론의 문제, 그리고 그 제시기술의 문제까지 용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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