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의 발견과 자아의 발견 - <그 후>를 읽고

 


 

<그 후>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후>는 사랑을 매개로 자신을 발견하고 정립해가는 한 인물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자아의 발견은 세계 속의 다른 존재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내면을 정립(자기세계)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자신의 내면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로서 감정을 보다 섬세하게 살피게 한다는 점에서 자아의 발견을 이끌어 내는데 촉매역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결혼과 구분되는 자신의 감정에 몰두할 수 있는 방식의 사랑으로서 연애는 그러한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는 제목에서 암시하는 어떤 시간부터 그 후에 지속되는 한 인물의 자아의 발견과 정립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 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다이스케다. 그는 지적이고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이다. 지적인 사람답게, 그는 자신의 예민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고통들을 빈틈없는 사고력과 예민한 감수성에 대해 지불해야 할 세금”(p. 16)정도로 생각한다. 다이스케는 외부에서 오는 온갖 자극들에 민감하며 그 민감성이 불러오는 피로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확고한 내면 세계를 구축한다. 나이가 서른이 되었음에도 그는 생활을 목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며 형과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가며 책을 읽고 사색하며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고 지키는데 몰두한다. 다이스케의 내면적 세계는 결혼이라는 주변 세계의 요구와 충돌한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형수는 다이스케를 사가와 일가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려 한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자신의 집안에 도움이 될만한 지방의 부자의 딸과 결혼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이스케의 친구인 히라오카가 도쿄로 돌아오게 된다. “다이스케와 히라오카는 중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로,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일 년 간은 거의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p. 22)사이이다. 히라오카의 결혼 역시 다이스케의 도움을 통해 이루어졌다. 히라오카는 직장 생활의 실패로 몸이 아픈 아내 미치요와 함께 도쿄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는 결혼 초기와 달리 소원해져 있다. 그리고 생활고와 소원한 부부 사이에서 미치요는 허전함을 느낀다. 미치요와 히라오카 그리고 다이스케의 미묘한 관계가 지속된다. 처음에는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한 돈을 매개로 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된다. 미치요의 오빠가 있었을 때, 세 사람은 함께 어울려 지냈고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모르지만 세 개의 동그라미는 돌면 돌수록 점점 좁아졌다. 결국 세 개의 동그라미가 한곳에 모여서 커다란 둥근 원이 되기 일보 직전”(p. 283)에 미치요의 오빠가 죽음으로서 <그 후>이 관계는 평형을 상실하고 표류한다. 다이스케는 히라오카보다 먼저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희생시키더라도 친구의 소망을 들어주는 것이 도리”(p. 336)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을 도운 것이다.

그 결혼을 도왔을 당시, 다이스케는 아직 어렸고 사고가 성숙하지 못했다. , 자신의 감정에 몰두하고 자신의 세계와 그 세계로부터 세상을 향해 지시하고 선택하는 힘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미치요가 법적으로 히라오카와 결혼한 상태이고 이 둘의 사랑이 친구에 대한 배신이자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더 실질적으로는 가족으로부터 받던 지원을 완전히 끊기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스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세계를 관철시키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오히려 삼각관계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형태의 관계, 가족과 사회적 시선의 무게,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 분명한 상황 같은 것들은 사랑을 매개로 한 자아를 더 강하게 만드는 조건에 불과한 것이다.

다이스케가 미묘한 삼각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에 몰두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선언하는 과정 그리고 세계 내에 존재하는 타인들의 시선과 사회적 제도에 맞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려는 노력은 자아가 성장하고 표현되는 과정이자 그것을 지켜내려 분투하는 과정이다. <그 후>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극적인 순간들이 연속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후>에서는 다이스케의 생각의 흐름과 그의 입을 빌려 감각적으로 표현되는 주변의 분위기를 통해 한 인간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로부터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즉 주변 세계에 함몰되지 않는 자아를 갖게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후>는 외양으로 드러나는 스펙타클 보다는 내면의 고고한 힘이 흐르는 작품이자, 그것을 세련된 감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