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ㅣ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12
강영안 지음 / 한길사 / 2012년 2월
평점 :
휴일을 맞아, 내친김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책에 대한 소감을 써본다. 아직 이 책을 절반 밖에 읽지 못했다. 내가 읽은 절반인 1부 "철학의 얼굴"은 저자가 생각하는 현대 철학 혹은 인문학의 위기와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으로 구성되어있다.
저자는 '학문'으로서 철학과 '삶'과의 괴리를 크게 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학문적인 엄밀함과 문헌에 대한 이해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한 반면에 학문과 삶의 간격은 엄청나게 커졌다"(p. 54)라고 지적하면서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대안으로서 [본래] 철학은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묻고 답하고 읽고 대화하는 가운데 존재한다"(p. 55)고 주장한다.
나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그의 문제의식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위에서 쓴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인문학이 우리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학문'이 되어버렸다."(p. 66)는 것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사유 구도는 '학문'과 삶의 이원론이며,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학문 혹은 논문으로 대표되는 학문적 글쓰기의 방식이 삶의 구체적인 결들로부터 벗어나있다는 것이다.
'학문', 그러니까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사유의 건축물은 분명히 일상적인 삶과 동떨어져 있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고도의 추상적인 작업을 통해서,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그것에 의지해서 우리는 일상을 좀 더 투명하게 바라보고 삶의 결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권리'나 '의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의 일상적 발화에는 '권리'나 '의무'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담겨있고 이것은 '권리'나 '의무'라는 개념을 통해 애초에 표현하고자 했던 바에 대한 정확한 반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저자가 걱정하는 삶과 괴리된 '학문'의 영역에서의 일은 대개 '권리'나 '의무'의 개념을 명확히 밝혀내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이러한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작업이 탄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함부로 '권리'나 '의무'를 들먹이는 사례에 맞설 수 없게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고도의 이론적 작업은 그 근본에 있어서 고도의 실천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저자가 비판했어야 할 것은 철학 혹은 학문이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추상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 사이의 연관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해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연구자들의 '게으름'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제대로된 철학자 그리고 철학도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가슴과 머리에서 '삶'이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는 엄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