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설국열차
CJ 엔터테인먼트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예술, 특히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예술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연성이다. 하나의 캐릭터가 제시되고, 캐릭터의 삶이 형성되며 캐릭터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가 꽉 짜여진, 그래서 시작부터 종결까지 필연적인 행위, 필연적인 삶 그리고 필연적인 세계와 그것들의 종말로 채워진 작품을 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들은 보는 이들의 특정한 감정들을 자극하기 위해 애를 쓴다. ‘여기서 울어야만 해혹은

여기서 빵 터져야만 해라고 감독이 말하는 장면들에서는 클리쉐들이 제시되고 보는 이들은 어김

없이 나도 그런 클리쉐들에 즐겨 눈물 콧물을 쏙 빼거나 환희의 웃음까지 잘 짓지만 그들의

요구에 감정적으로 부응한다. 그런 영화들에는 그 감정들을 자극하기 위해 쓸데없는 장면들을 많

이 넣는다. 그런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그 영화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더라도 아주 중요한 목적이

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은 과잉된 것들은 좋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런 점에서 <설국열차>는 좋은 영화다. <설국열차>에는 군더더기가 적다. 물론 약간의

과잉, 특히 커티스가 자신의 목표를 거의 다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

했을 때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커티스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지 직접적으로 제시해주는지를 보여주는 장

면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넘어갈 수 있고 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설국열차>

에서는 각각의 캐릭터가 각자에게 부여된 필연성에 따라 이야기의 형성해내고 그에 따라 비극성

혹은 희망을 부각시키고 있다. 티미는 왜 단백질 블록 2개가 아니라 공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했을까? 좁은 열차 안에서 공놀이를 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티미에게는 그런 열망이 있었던 것이고 이런 티미의 열망이 그가 몸을 구부려 나사를 조이는 모습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또 요나에게 민수는 자신이 만났던 청소부 에스키모 여인이 가진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을까? 영화가 끝날 때, 요나가 입고 있었던 옷과 그녀의 외모 그리고 그녀가 걸어간 길이 요나에게 제시된 필연성이었기 때문이다. 요나는 등장하지도 않은 여인이 가진 믿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이야기 속에서 가야할 바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슬픔이든 희망이든, 아니 우리의 모든 감정들을 개연성있게 이끌어 내주는 그리고 왜 우리가 그것에 슬퍼하고 또 희망을 갖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로서 <설국열차>는 좋은 영화다. 이것이 내가 그것을 두 번 본 이유이며 앞으로 한 번쯤은 극장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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