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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위드 러브
우디 앨런 감독, 알렉 볼드윈 외 출연 / UEK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무엇을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단일한 기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기준’, 그것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꽤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태, 인물, 대상 등으로부터 느끼는
감정들은 기본적으로 평가적이고 이 인지하기 힘든 평가의 과정에는 마찬가지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종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무엇이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로 만들어 주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불러
모은 관객수는 최근에 가장 유의미하게 활용되는 기준 중에 하나일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사람이 봤다고 해서 그 영화가 곧바로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개인적으로 나는 삶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포착해서 보여주는 영화는 최소한 나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생생하게 포착된 삶의 한 단면이 아름답고 또 재미있는 방식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꽤 훌륭한 점을 지닌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디 앨런의 신작 <로마 위드 러브>는 꽤 훌륭한 점을 많이 지닌 영화이다. 먼저 <로마 위드 러브> 보다는 우디 앨런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본다면, 최근 우디 앨런은 특정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거나
도시 이름을 전면에 내거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To Rome with
love>(2013), <Midnight in Paris>(2012) 그리고<Vicky, Cristina, Barcelona>(2008, 번역된 제목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들이 그런 영화에 속할 것이다. 로마, 파리 그리고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우디 앨런은 꽤나 흥미롭게 시각화시켜준다는 점도 꽤 흥미롭다. 더불어 우디
앨런은 ‘환상’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그런 욕망들을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 같다. 사실 최근 영화들은 거의 ‘환상’이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 위드 러브>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환상’을 다룬다. 로마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이 가진 ‘환상’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한 번쯤 꿈꾸는 그런 환상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예를
들면 평범한 회사원이고 회사에서 존재감도 없는 그런 사람이 엄청난 유명인이 된다는 환상, 또
여자 친구의 친구(심지어 그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탈적 경험들을 즐기기도 한다)와 사랑에 빠지는 환상, 은퇴한 고전 음악 프로듀서가 자신이
굉장히 선구적인 사람이며 자신이 발굴한 오페라 가수가 대단히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환상,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여성이 도시의 영화배우나 강도와 사랑을 나누는 환상, 반대로 순박한 시골 청년이
거칠 것 없는 도시의 섹시한 창녀와 사랑을 나누는 환상 등 영화가 다루는 환상들은 소재 자체로는 진부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과 더 가까이 있는 것들이고 우리가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또 만들어
내는 환상이다.

이런 ‘환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아마 감독의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환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즉 ‘현실을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이런 평범하고 진부한 환상들을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환상’을 다루지 않는다. 아주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이것이 ‘환상’이다는
점을 보여주고 또 어떨 때는 제 3자가 개입해서 당신이 갖고 있는 환상이 얼머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환상’에 대한 주된 태도는 ‘유머’ 혹은 ‘풍자’이지
결코 ‘비난’이 아니다.

우디 앨런은 ‘유머’를 활용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을 즐겁게 볼 수 있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그렇기에 <로마 위드 러브>는 꽤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로마 위드 러브>는 우리의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하여 보여주고 –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비록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 그것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훈계하지 않되,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 제 3자의 해설이 제시 – 유머를 통해 재밌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