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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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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詩の力)은 ‘디아스포라 사상가’ 서경식(1951~)의 첫 문학에세이집이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식의 주제로 책을 출간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이 땅의 지식계와 독서계에 신선한 충격과 서늘한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p.279) 현재 東京經濟大學에서 “‘인권과 마이너리티’라는 과목명으로 재일 외국인의 인권을 둘러싼 여러 문제와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등 마이너리티 박해에 관해 강의하”(p.90)고 칼럼이나 강연 등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꾸준히 피력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등이 있다.

 

강렬한 일러스트와 제목에서 짐작하듯 이 책이 다루는 철학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래도 강연 원고를 가필 또는 집필한 것이고, 시가 다수 수록되어있어 읽기 수월하다. 이 책은 ‘2015년 작가들이 사랑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들은 추락한 작금의 문학적 권위를 회복시키는데 <시의 힘>이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남은 삶을 ‘글’과 함께 할 독자라면 필독을 권한다.

 

저자는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일본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날카롭게 분석한 일본 지식인들의 ‘자국민 대상 세뇌 프로젝트’를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견지를 뚜렷이 하고 싶은 독자라면 관심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특히 서경식의 글을 평소 애정하는 독자라면 수장 욕구를 자극할 소식이 있다. “저자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자비출판한 개인 소장판 시집 <8월>에 수록된 열한 편의 시 전문을 번역하여 수록했다는 점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볼 충분한 매력과 가치가 있다.”(p.280 권성우 문학평론가)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저자는 서문에 “근래에 강연한 내용 등을 기반으로 집필한 에세이 가운데, 넓은 의미에서 ‘문학’과 관련된 것들을 뽑아 엮은 것이다. 대부분 (...)강연 원고를 가필했다. 다만 3장 (...) 1, 2부 두 편만은 (...)강연을 토대로 집필한 것이며, <시의 힘>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직접적으로 이 두 편에 기대었다.”(p.4)라고 밝혀두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루쉰을 사랑했다. 그래서 루쉰의 글을 제대로 해석한 나카노 시게하루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카노는 루쉰의 글에서 절망밖에 읽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p.110)라고 느낀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시의 힘이며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p.110)인 것이라 정의했다.

 

특히, ‘환등 사건’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흥미롭다. “일본의 근대화를 지고 나아갈 지식인 예비군들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인 학생의 존재에도 개의치 않고, 참수 장면에 박수갈채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아시아 근대사 출발점에 있어서의 엄청난 시각차가 존재한다.”(p.102)며 그의 범세계적 소신을 함께 밝혔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관점을 견지한다. 국가, 민족,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한 개인으로서 존재를 자각하고 인간다움을 발휘하는 보편적 인간애를 위한 관점 말이다.

 

일본제국주의와 독재 정권의 공통점은 바로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학대했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 힘든 시기 민중의 아픔을 대변했던 시인, 한용운, 이상화, 윤동주, 김수영, 김지하 등 그들의 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 공포와 설움, 혼돈의 세월 속에 ‘시의 힘’을 깨달을 수 있었던 저자는 그래서 더욱 김지하의 변심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리라.

 

저자의 범세계적 행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도 발휘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의 정주하 사진작가가 원전 사고 피해지를 촬영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고 그는 함께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 타이틀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였고, 이것은 조선의 시인 이상화 ‘시’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당한 이들은 피난을 갔든 현지에 남았든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이다. 명백한 사실은 그들의 ‘토지’가 국가와 자본에 오랫동안 빼앗겼다는 것이다. (...) 바로 그 ‘빼앗겼다’라는 고통으로부터 다시 한 번 출발하여 ‘빼앗은’ 자들, 즉 국가나 자본과 싸워야만 한다. 이 사실을 중심에 두면 오키나와, 후쿠시마, 조선이라는 삼자는 서로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정주하, 한홍구, 그리고 나, 세 사람의 일치된 생각이다.”(p.127~128)

 

저자는 빼앗긴 것을 ‘조선의 국토’(민족)에 두지 않고 고통 자체에 두었다. 그리고 ‘고통’을 제공한 책임자를 ‘공격 대상’으로 설정하고 ‘피해자’(마이너리티)끼리의 연대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런 식의 연대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본 것이다. 생각의 전환, 열린 사고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세상 따라 시의 소재도 달라진다. 시인의 존재 이유를 정희성의 <시를 찾아나서며>에서 밝히고 있다. “시인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산소 결핍 징후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침묵할 때에도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p.153)이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p.155)며 시인들에게도 각성을 촉구한다.

 

또 저자는 각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인, 디아스포라를 평등한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열린 공동체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 뿐만 아니라 “비유럽권에서 일어난 ‘외적타자’에 대한 제노사이드, 특히 아프리카나 남북아메리카 선주민을 표적으로 삼았던 제노사이드에 관한 문학작품의 수는 많지 않다.”며 여기서도 특별히 시인들의 역할을 당부했다.(p.215)

 

프리모 래비의 주장은 독자들을 한층 더 심오한 철학적 경지로 이끈다. 래비는 유태인들에게 당시 나치로부터 피신할 충분한 시간과 정보가 있었음에도 ‘어째서 사전에 도망가지 않는가?’라고 묻고 ‘편리한 진실’, 무의식중에 믿어버린 ‘허위’나 ‘환상’ 등의 심리 상태의 심각성을 함께 분석해 내놓았다. 또 우리는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할까?’라며 주의를 환기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공포는 당시의 공포보다 과연 더 근거 없는 것일까?”(p.229)라고.

 

서평에 다 적지 못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세계시민으로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는 독자라면 말이다. 저자는 디아스포라의 외로운 삶의 ‘恨’을 ‘더불어 함께 사는 데’에서 찾은 이 시대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시의 힘>에는 그런 그의 진심이 잘 표현되었다. 다만 이 책에서 그의 문학작품만을 기대했던 독자라든지 제목만을 보고 책을 고른 독자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 내용에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있고, 그 전체에 ‘시의 힘’이 관통하고 있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하여 개인적 바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에세이와 시로만 채워진 책이 출판되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산소 결핍 징후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침묵할 때에도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p.153)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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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He Gave Me Roses of the Balkans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72
정미경 지음, 스텔라 김 옮김, 전승희 외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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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외로움의 서사시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2014), 정미경, 아시아

 

【 한 고시원 방에서 시신이 부패한 채로 발견되었다. 50대 기러기 아빠였다. 방에는 노트북 한 대와 지갑과 통장, 해외송금에 쓰인 몇 장의 서류들, 책 몇 권과 생활용품 그리고 라면 두 봉지가 다였다.】

 

중년의 고독사! 요즘 심심찮게 회자되는 뉴스 중 하나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그저 자기네들보다는 편안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당신 평생의 숙제인듯.. 그래서 아이들이 따라만 준다면 그것이 고마워 자기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온갖 무리를 해서라도 끝까지 공부를 시키려 한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마치는 게 그 중 좋은 방법이라 여긴다. 그렇게 자녀는 유학, 아내는 아이들 돌보미로 함께 떠나보내고 아버지는 홀로 남아 학비며, 생활비를 송금한다. 아이들은 대개 금방 현지에 적응하고 아버지는 잊혀지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간다. 간혹 아내에게조차 외면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남자'가 바로 그런 중년 남성이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이 소설의 저자는 작년 12월, 독자들 곁은 떠난 정미경(1960~2017)이다. 저자는 이 소설로 '서사구조의 고전적 안정감, 미묘한 정서를 옮겨 담는 섬세한 문체, 존재와 삶을 응시하는 강렬한 시선'이라는 평을 받으며 200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본문은 p8~p102로 비교적 짧다. 더욱이 책은 문고판이고 한 면은 국문, 다른 한 면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있다. 짧디짧은 소설이지만 그 여운만은 오래 남는 긴 소설이다.

 

​"가장 좋았던 건 뭐였어요?"

"(....) 해안가의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클램차우더 수프야. 비오는 날, 피셔먼스 워프에서 먹었던 클램차우더 수프, 그게 제일 좋았어."

 

소설의 시작 부분이다. 외국 출장을 다녀온 애인에게서 독특함과 함께 서운함을 느끼는 재이. 가장 좋았던 게 음식이라니.. 그녀는 이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서 '외로움'을 읽었다. 그 연민이 육체를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시켰고, 서로 의지가 되어주고 있다. 남자는 재이 앞에서 잠시도 쉬지않고 수다를 떤다. 그 말들 중 진실은 없다. 그 사실은 그도 알고 재이도 안다. 어느날 우연히 본 TV 다큐프로를 통해 이 남자가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아내가 꺼낸 이야기. 이 고백 후 아내와 아이들은 뉴욕으로 떠났다. 사실 재이에게 말한 외국 출장은 거짓이었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뉴욕에 다녀온 것이었다.

 

"당신을 견딜 수 없어. 모든 걸, 국을 떠먹는 모습도, 수그린 머리의 가르마도, 웃는 모습도, 잠든 모습도, 엎드려서 신문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 모든 게. 그런데 가르마라니, 내가 웃고 있을 때조차 마음 속으로는 견딜 수없어, (..) 아내가 견딜 수 없다는 점들은 모두 변경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내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p.24~26)

 

소설은 여자 입장에서 한 단락, 남자 입장에서 한 단락, 교차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서로의 진실과 상황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겪고 있는 극단적 외로움을, 그런 인간의 심리상태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행동과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자기를 가장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자신조차 속이는지 모두..

 

​그리고 가족이 무엇인지,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삶을 어디까지 관여해야하는 것인지. 부모에게 자식은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는 존재이며, 또 자식은 부모를 어디까지 봉양할 책임을 가지는 것인지. 가족이 왜 필요하며, 가족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은 타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 등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함께 던져주고 있다. ​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졌다면 그들은 서로간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또 사랑받아야 할 권리를 동시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왜 망가지게 되는 것일까. 이기심, 허영심일 것이다. 상대의 외로움에 눈 감아 버리는 이기심. 그런 행동들은 결국 자기를 망치고 가족을 망치고 결국 사회까지 망치는 것인데도 말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것에서 사유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오늘 짧은 이 소설 한 편으로 인간 속의 인간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배가 고프다. 빈속에 커피 한 잔 마신 게 전부니. 오래전부터 냉장고 속은 텅 비어 있다. 라면을 끓여서 냄비째 들고 와 바닥에 신문을 깔아 올려놓고 자정뉴스를 보며 먹었다. 김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국물을 마시려고 보니 개미 한 마리가 동동 떠 있다. 젓가락으로 건져 신문지에 털어내고 냄비를 들어 올리니 신문지가 들러붙어 따라온다. (...) 미지근해진 국물을 마저 마시고 말끔히 설거지를 했다. 돌아오자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p.32)​

"알바니아. 겨울엔 비와 진흙 때문에, 여름엔 먼지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는 곳이지만 그것보단 어디서 저격병의 총탄이 날아와 몸에 박힐지 모르는 처절한 내전의 땅이지. 그 발칸반도의 어둠이 흩어지기 전, 무거운 공기가 흔들리기 전, 자정부터 새벽 사이에 줄기를 자른, 강한 향기가 고스란이 가두어져 있는 그곳의 장미가 지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거야."(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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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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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지금은 고인이 된 故 정미경(1960년~2017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랑, 욕망, 탐욕과 집착, 연민, 자기애, 허무, 후회를 다루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죄다 서로 어긋나있고, 욕망에 가려져있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그들의 욕망은 결국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결론은 좀 의외였다. 뉘우침의 기회를 잡으려는 자에게는 죽음을, 한결같이 비겁한 자에게는 승리를 안겨주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권선징악의 교훈에 있지 않고 현실의 반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이 그러하듯 소설 속의 역사도 현재진행형으로 둔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질주이다. 설국열차가 브레이크 없이 무한 궤도를 질주하듯 중호는 자신의 애마, 부의 상징인 재규어를 몰고 한 밤중의 속도감을 즐기고 있다. 속도계가 180을 넘어간다. 아! 그 순간 누군가 따라붙었고 살해 위협을 느낀다. 이 남자 중호는 “리니엔쿠라는 사람이 말했어요. 나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정말 심금을 울리는 말이쟎아요?”(p.183)라고 말하는 그야말로 돈의 화신인 인물이다. 당연히 피도 눈물도 없으며, 합법과 불법을 오가며 각종 편법을 동원하여 부자들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개인 부티크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대단한 실력자이긴 하다. 주위에서는 그를 동물적인 육감을 지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철저한 분석에 의해 나온 계산의 결과물들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살아온 세월만큼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겨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당췌 변하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다만, 중호는 삶의 가치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주어졌다. 윤 신부와 그가 돌보는 아이들, 지원과 몇 차례 만남을 거듭하면서 찾아온 변화였다. 조금의 시간이 그에게 더 허락되었더라면 아마도 중호는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삶의 과정을 즐기는 삶이 되지 못하는 한, 삶은 늘 외롭고 허무하고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또 한 명의 남자, 한석은 자기애에 빠진 이중인격자이다. “머리로는 혁명을, 입술엔 와인을, 가슴속엔 천박한 권력욕의 풍선을 품고 있”(p.235)는 “고쉬 캐비아”(p.235)(프랑스 용어)이다. 겉으론 민주투쟁의 아이콘인양 행동하지만 내면은 더럽고 치졸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 비겁하고 탐욕으로 가득찬 무책임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원과 사랑하면서 어린 윤희를 임신시켰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일도 없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연민한다. 투쟁하던 시절, 뜻을 함께 하던 후배를 자살로 내몰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음에도 기어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윤희. 모든 것을 깨부수고 싶었던 어린 시절, 야학 선생님이 집 다락방에 피신 중이었다. 그 남자를 사랑했을까? 죽도록 사랑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반신불수 아버지가 버젓이 두 눈 뜨고 누워있는데도 매일 미친 듯이 그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 것 아니겠는가. 그 선생님, 한석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몸만을 탐한다. 현재는 배우이자 고급 콜컬이다. 또 한 남자 중호, 한석이 그녀의 몸만을 탐하는 인물이라면 중호는 그녀의 시간만을 탐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두 남자 모두 또 다른 여자, 지원을 사랑한다. 그림으로 세상, 자연과 인간을 표현하는 유지원, “내 작품에 매달린 이런 저런 꼬리표들을 전부 떼어내고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 승부하”(p.144)고픈 그녀, 새침하면서 부탁도 거절도 못하는 게 천성이다. 하지만 유독 한 남자에게만은 부탁도 거절도 자유롭다. 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가 동주다. 그 남자에게는 지원이 해바라기 자체이고 그는 그녀의 키다리아저씨다. 하지만 그녀에게 동주는 만만한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그의 마음을 알았지만, 글쎄.. “야학은 처음엔, 앨리스가 우연히 가게 된 이상한 나라와도 같았다. 좁은 구멍을 다시 돌아 나오면 잊혀져버릴 낯선 공간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는 호기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땐 토끼의 귀를 잡아당기면 다시 그 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구멍의 안과 밖,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코드가 동주였다. 동주는 아무 때나 잡아당기면 될 것 같은 토끼의 귀였다.”(p.62)

 

또 한 사람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 윤 신부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영웅이라 불릴 만한 딱 한 사람이다. 영웅이라 불리기에도 사실 옹색한 것이 사실 그조차도 주인공들의 삶에는 그렇게 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올곶은 삶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전부이니 작은 영웅이라고 해두면 좋을 듯 하다. 사실 그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에 소문내서 같이 하자.(...) 천사의 집의 천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신부님이라고.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귀여운 천사가 아니라 주름이 지고 아랫배는 나오고 애들을 위해서라면 은근슬쩍 편법도 마다 않는 사기꾼 천사. 동네 과수댁의 연정을 사업에 이용하는 제비 천사. 기부금 독촉 전화하면서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뻔뻔 천사.”(p.61)일 뿐이다.

 

소설에는 절대 캔디도, 절대 백마 탄 왕자도, 절대 얄미운 이라이자도 없다. 말하자면 피해자가 곧 가해자이고, 가해자가 곧 피해자인 것이다. 하물며 중재자도 없다. 보통은 이 존재가 주요 사건의 배경과 진행 상황을 우연히, 혹은 캐물어서 어렵게 알게 되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전달해주는 사이다 역할을 해야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존재가 애초에 없었다. 사실 그 역할을 윤 신부가 해 주리라 기대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의 요지일지라도 대상자 역시 모르는 대로 그냥 넘어가버린다. 사실 이런 것이 더 현실과 부합하는 장치라고 본다. 요란스러운 신파도, 글을 꾸미려는 미사여구도 없다. 그리고 감정고조를 시킬 일도, 감정에 호소해야하는 부분도 없다. 그저 묵묵히 그려내는 디테일한 현실적인 묘사만으로 사건들을 설명하고 그것으로 가슴이 쫀쫀해지는 긴장감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이런 것이 과연 정미경 작가의 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람이 갈라지는 목소리를 싣고 목초지 위로 달아난다. 악을 쓰는 윤희를 뻔히 바라보던 한석이 등을 돌려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윤희는 왼손에 쥐고 있던 베레타를 들어올려 조준경에 눈을 갖다댄다. 눈물 속에 그의 뒷모습이 몇 겹으로 흔들린다. 손등으로 눈을 쓱 닦고 다시 구멍을 들여다본다. 수그린 목덜미 아래 완강한 어깨, 차진 모래가루가 아직 반짝이며 들러붙어 있을 등줄기, 손바닥이 기억하는 그의 엉덩이의 굴곡, 그 아래 강인한 두 다리. 억세게 내 허리를 감싸던 푸른 나무 같은 다리. 손가락을 당기는 순간 누군가 낚아채 듯 어깨가 뒤로 밀리고 꼭 그 힘만큼 누가 민 듯 그가 휘청하며 주저앉는다. 윤희의 귀에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억누른 비명만이 귀를 찢는다. 풍경이 아득해진다. 손바닥이 차갑게 미끈거린다. 바람과 햇살 아래 그의 모습이 꿈속의 풍경인 듯 희게 바랜다.”(p.283~284)

 

책 무게는 2005년 1쇄판 누런 종이라 한없이 가벼웁다. 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무게는 대체 몇 톤일지 가늠이 안 될 정도이다. 한 장 넘기면, 다음 장, 다음 장 넘기면 그 다음 장....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성찰과 사유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 책을 서점에서 구할 수 없었다. 절판이란다. 나는 다행히 어떤 이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입수하여 읽을 수 있었는데,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으나, 하지만 이런 수작을 책이 없어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석과 지원이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장면을 발췌해 보았다.


"강기슭에 매여 있는 두 개의 목선이 미풍을 못 이겨 서로의 몸을 부딪는 것 같은 그런 부딪침. 그렇게 무언가, 똑같은 원형질의 존재가 부딪쳐오는 느낌에 지원은 몸을 움츠렸다. (..) 잠에서 깨어난 숲에서 풀잎을 짓이기는 듯한 초록빛 향기가 번져왔다. 강물이 기슭에서부터 뒤채기 시작했다. 발 아래서 노란 애기똥풀 꽃이 하나둘 피어났다.

바로 그 때. 그 순간처럼 삶이 신비롭게 피어나는 때가 있을까. 다른 생의 길을 질주하던 두 영혼이 맞부딪치며 달려오던 가속도로 뒤섞이고 회오리쳐 끝내 분리될 수 없는 새로운 화합물로 변화하는 순간. 그 부딪침은 다른 모든 존재들을 지워버렸다.

두 개의 낯설고 오만한 세계가 섞일 때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신생의 별처럼 탄생했다. 낮과 밤이 살을 섞는 일몰의 시간, 혹은 여름과 가을이 서로 섞이는 그 형이상학적인 시간처럼. 연애를 시작하는 두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그 두 세계가 부딪치는 순간의 광휘에 먼저 매혹되는 것인지도 몰랐다."(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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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요다’는 2017년 12월 27일, 판타지 단편 소설집 <회색인간>(김동식 소설집1)을 다른 두 권 <13일의 김남우>,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와 함께 시리즈로 동시 출간하였다. 이 세 편의 작가는 모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작가 김동식(1985~)이다. <회색인간>은 특히, 출간 일주일 만에 2쇄, 2주 만에 3쇄, 현재 4쇄 5천부가 추가 출간 예정이다.

 

이렇게 인기가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소설은 첫째, 재미있다. 귀여운 기괴함, 스토리가 참신하고 독특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조롱하는 듯한 서늘한 결말, 그것이 툭 던져지듯 마무리된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기상천외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둘째, 문맥이 단순하고 대화체 문장이라 읽기 편하다. 셋째,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담고 있는 철학이 묵직하여 지적 향유까지 누릴 수 있다. 지구 환경, 인간 본성들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그 해결책(알아챌 수 있다면)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회색인간>은 단편소설집으로 회색인간, 무인도의 부자 노인, 낮인간·밤인간, 아웃팅, 신의 소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디지털 고려장, 소녀와 소년·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운석의 주인,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한다, 돈독 오른 예언가, 인간 재활용, 식인 빌딩, 사망 공동체,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흐르는 물이 되어,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 협곡에서의 식인, 어린 왕자의 별, 444번 채널의 동굴인들,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 스크류지의 뱀파이어 가게, 피노키오의 꿈 등 총 2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인간을 지구 밖으로, 땅 속으로, 기괴한 생물체 위로, 지옥으로, 무인도로, 미래로 내몬다. ‘회색인간’에서는 인간 만 명이 땅 속으로 증발해 버리는데 사실은 기저 세계의 인간들이 노동을 시키기 위해 끌어온 것이었다. 그들 기저 인간은 초능력을 가지고 땅위의 인간들을 조정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만 명의 인간들은 처음에는 서로 반목하며 극도의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면서 점점 피부가 회색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인간 본모습을 찾으며 화해와 사랑, 연민으로 마지막을 함께 하는 존재가 되어준다.

 

때로는 “[멸종 위기 동물 : 인간]” (아웃팅 p.74)이 되기도 한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에서 인간들과 인조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인간은 인조인간을 멸시하고 조롱하면서 배척한다. 일부는 이런 태도에 경멸을 표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들은 시기의 대상이며, 화풀이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조인간이라고 밝혀진 그들조차도 사실은 자신들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되고 비참해지는 것인데, 양심 기자의 끈질긴 추격 끝에 사실은 몇 명의 인간은 보호구역에서 보호 중이며 사회의 모든 인간은 인조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만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에 귀천이 없음을 말하고 싶었 던 건 아닐까.

 

또 인간이 모두 좀비가 되기도 한다. “2년 전 인류는 신의 비밀이라 일컬어지는 성스러운 항아리를 파내었다. 절대 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기록들을 무시한 인류는 항아리를 개봉했고, 끔직한 신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전 인류가 모두, 좀비가 되고 만 것이다. 세계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문명이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늘 좀비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특정 시간을 기준으로 인류의 절반은 낮에만, 나머지 절반은 밤에만 좀비로 변했다.”(낮인간, 밤인간 p.34)

 

그들 낮인간, 밤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낮과 밤을 따로 산다는 한계 때문에 비록 가족이라고 해도 전혀 소통을 할 수 없다. 서로를 해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낮인간은 자기들이 힘들게 노동한 것을 밤인간들이 모두 소비해버린다고 하고, 밤인간은 낮인간들이 가상 태양 계획에 반대한다고 불만이다. 서로 적대시하며 풀지 못한 실타래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은 낮인간인데 어여쁜 자식이 밤인간이라면? 아찔하지 않은가? 작가는 이 단편을 통해 소통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지구에 종말의 순간이 다가오기도 하는데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수많은 착오 속에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해준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조그만 실수를 꼬투리잡아 그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며 결정적 오판을 해버리는 ‘인류 최고의 지성’들을 꼬집기도 한다.

 

작가 김동식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세 권에 발표된 이야기가 60여편, 애초 300편이 넘었다고 하니 과연 새해 출판계를 뒤흔들만하지 않은가. <만약 말이야...>라는 가정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프랑스 소설가가 있다. 그는 <개미>, <제 3인류>, <나무>, 그리고 스테디셀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을 좋아해서 신간이 발표될 때마다 빠르게 입수하여 읽는 편인데 <회색인간>은 그의 단편을 읽는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김동식에게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별명을 지어주며 우리 한국에도 이런 상상력으로 색다르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신인작가가 있다고 그에게 자랑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작가 김동식의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의 이어지는 단편은 물론, 더불어 그의 장편도 기대해 본다. 독자들도 그의 1호 작품 <회색인간>을 읽는다면 나머지 그의 작품을 있는 대로 구해서 소장하고픈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도 초판으로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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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나를 찾다 - 함께 쓰기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
이진희 외 지음, 숭례문학당 엮음 / 북바이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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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나를 찾다>를 통해 꿈은 크게, 발은 땅에.. 하여 책을 더더더 열심히 읽고.. 읽기만 하지말고 서평 등을 통해 생각 정리를 계속 이어나갈 것, 그리고 독서토론 등을 통해 남 앞에서도 얘기할 수 있는 배짱도 키우고.. 매일매일 하루도 빼먹지말고 글을 쭈욱~ 닥치고 써나가야겠다.. 는 다짐을 했다.

 

저자들이 나와 톡을 주고받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더 가슴에 와닿았던 것 같다. 그리고 느슨해 질뻔했던 절묘한 타이밍에 그 나사를 다시 조일 수 있어 더 좋았다. 확실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뭐랄까?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저 멀리, 손에 닿지도 않을 것 같은 먼 곳에.. 막연한 느낌의 것이 아닌, 마치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곧 닿을 수 있는.. 그래서 이 책이 그런 징검다리를 놓아준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나의 꿈과 크게 다르지않은 사람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느낌..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제목 그대로 책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찾는 과정'임을 수기적 글쓰기를 통해 소개하고 독려하려했다면 좀더 다양한 연령층의 글이 소개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해서이다. 그래서 평점에서 별 하나를 뺐다.. 내가 중장년층이라고 해서 나만을 위해서 책을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엄마, 아빠, 딸, 아들, 이웃들을 위해서도 책을 고르고 읽고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특히, 젊은이들.. 글쓰기에 비전을 가지고 글쓰기 세계에 입문하여 밥벌이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더 개발하여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글쓰기로 나를 찾다 2탄, 3탄..>이 계속 나올 수 있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지금 20대들이 너무 불안하지 않은가.. 감히 믿어보고 싶다.

나무 식탁을 장만했다. 작은 방에 있던 물건을 빼고 식탁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밥 대신 책을 펼쳤다. 나만의 방은 없어도 나만의 책상은 필요했다. 책과 나무 냄새가 잘 어울렸다. 동트기 전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이 고요하다. 목이 말라온다. 주방에서 연한 커피를 타서 의자에 앉는다. 전날 밤 잠들면서 표시해둔 페이지를 펼쳤다. 어느덧 창밖은 아침햇살로 빛나고 있다. 읽는 속도도도 붙고 몰입도가 올라가지만 아침밥을 차려야 한다. 피훌 수 없는 주부의 숙명이다. p15

글쓰기를 시작한 후, 책을 읽거나 영화나 TV를 보면서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글을 쓸 때 메모해두었던 문장을 활용하여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본다.p31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고단한 일상을 이어나가고, 주변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매일 글을 써나가면서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분노와 우울, 자괴감이 눈 녹듯 사라져갔다. 글을 쓰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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