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요다’는 2017년 12월 27일, 판타지 단편 소설집 <회색인간>(김동식 소설집1)을 다른 두 권 <13일의 김남우>,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와 함께 시리즈로 동시 출간하였다. 이 세 편의 작가는 모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작가 김동식(1985~)이다. <회색인간>은 특히, 출간 일주일 만에 2쇄, 2주 만에 3쇄, 현재 4쇄 5천부가 추가 출간 예정이다.
이렇게 인기가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소설은 첫째, 재미있다. 귀여운 기괴함, 스토리가 참신하고 독특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조롱하는 듯한 서늘한 결말, 그것이 툭 던져지듯 마무리된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기상천외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둘째, 문맥이 단순하고 대화체 문장이라 읽기 편하다. 셋째,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담고 있는 철학이 묵직하여 지적 향유까지 누릴 수 있다. 지구 환경, 인간 본성들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그 해결책(알아챌 수 있다면)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회색인간>은 단편소설집으로 회색인간, 무인도의 부자 노인, 낮인간·밤인간, 아웃팅, 신의 소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디지털 고려장, 소녀와 소년·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운석의 주인,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한다, 돈독 오른 예언가, 인간 재활용, 식인 빌딩, 사망 공동체,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흐르는 물이 되어,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 협곡에서의 식인, 어린 왕자의 별, 444번 채널의 동굴인들,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 스크류지의 뱀파이어 가게, 피노키오의 꿈 등 총 2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인간을 지구 밖으로, 땅 속으로, 기괴한 생물체 위로, 지옥으로, 무인도로, 미래로 내몬다. ‘회색인간’에서는 인간 만 명이 땅 속으로 증발해 버리는데 사실은 기저 세계의 인간들이 노동을 시키기 위해 끌어온 것이었다. 그들 기저 인간은 초능력을 가지고 땅위의 인간들을 조정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만 명의 인간들은 처음에는 서로 반목하며 극도의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면서 점점 피부가 회색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인간 본모습을 찾으며 화해와 사랑, 연민으로 마지막을 함께 하는 존재가 되어준다.
때로는 “[멸종 위기 동물 : 인간]” (아웃팅 p.74)이 되기도 한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에서 인간들과 인조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인간은 인조인간을 멸시하고 조롱하면서 배척한다. 일부는 이런 태도에 경멸을 표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들은 시기의 대상이며, 화풀이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조인간이라고 밝혀진 그들조차도 사실은 자신들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되고 비참해지는 것인데, 양심 기자의 끈질긴 추격 끝에 사실은 몇 명의 인간은 보호구역에서 보호 중이며 사회의 모든 인간은 인조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만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에 귀천이 없음을 말하고 싶었 던 건 아닐까.
또 인간이 모두 좀비가 되기도 한다. “2년 전 인류는 신의 비밀이라 일컬어지는 성스러운 항아리를 파내었다. 절대 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기록들을 무시한 인류는 항아리를 개봉했고, 끔직한 신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전 인류가 모두, 좀비가 되고 만 것이다. 세계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문명이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늘 좀비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특정 시간을 기준으로 인류의 절반은 낮에만, 나머지 절반은 밤에만 좀비로 변했다.”(낮인간, 밤인간 p.34)
그들 낮인간, 밤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낮과 밤을 따로 산다는 한계 때문에 비록 가족이라고 해도 전혀 소통을 할 수 없다. 서로를 해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낮인간은 자기들이 힘들게 노동한 것을 밤인간들이 모두 소비해버린다고 하고, 밤인간은 낮인간들이 가상 태양 계획에 반대한다고 불만이다. 서로 적대시하며 풀지 못한 실타래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은 낮인간인데 어여쁜 자식이 밤인간이라면? 아찔하지 않은가? 작가는 이 단편을 통해 소통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지구에 종말의 순간이 다가오기도 하는데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수많은 착오 속에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해준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조그만 실수를 꼬투리잡아 그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며 결정적 오판을 해버리는 ‘인류 최고의 지성’들을 꼬집기도 한다.
작가 김동식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세 권에 발표된 이야기가 60여편, 애초 300편이 넘었다고 하니 과연 새해 출판계를 뒤흔들만하지 않은가. <만약 말이야...>라는 가정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프랑스 소설가가 있다. 그는 <개미>, <제 3인류>, <나무>, 그리고 스테디셀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을 좋아해서 신간이 발표될 때마다 빠르게 입수하여 읽는 편인데 <회색인간>은 그의 단편을 읽는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김동식에게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별명을 지어주며 우리 한국에도 이런 상상력으로 색다르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신인작가가 있다고 그에게 자랑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작가 김동식의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의 이어지는 단편은 물론, 더불어 그의 장편도 기대해 본다. 독자들도 그의 1호 작품 <회색인간>을 읽는다면 나머지 그의 작품을 있는 대로 구해서 소장하고픈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도 초판으로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