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외로움의 서사시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2014), 정미경, 아시아
【 한 고시원 방에서 시신이 부패한 채로 발견되었다. 50대 기러기 아빠였다. 방에는 노트북 한 대와 지갑과 통장, 해외송금에 쓰인 몇 장의 서류들, 책 몇 권과 생활용품 그리고 라면 두 봉지가 다였다.】
중년의 고독사! 요즘 심심찮게 회자되는 뉴스 중 하나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그저 자기네들보다는 편안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당신 평생의 숙제인듯.. 그래서 아이들이 따라만 준다면 그것이 고마워 자기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온갖 무리를 해서라도 끝까지 공부를 시키려 한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마치는 게 그 중 좋은 방법이라 여긴다. 그렇게 자녀는 유학, 아내는 아이들 돌보미로 함께 떠나보내고 아버지는 홀로 남아 학비며, 생활비를 송금한다. 아이들은 대개 금방 현지에 적응하고 아버지는 잊혀지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간다. 간혹 아내에게조차 외면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남자'가 바로 그런 중년 남성이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이 소설의 저자는 작년 12월, 독자들 곁은 떠난 정미경(1960~2017)이다. 저자는 이 소설로 '서사구조의 고전적 안정감, 미묘한 정서를 옮겨 담는 섬세한 문체, 존재와 삶을 응시하는 강렬한 시선'이라는 평을 받으며 200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본문은 p8~p102로 비교적 짧다. 더욱이 책은 문고판이고 한 면은 국문, 다른 한 면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있다. 짧디짧은 소설이지만 그 여운만은 오래 남는 긴 소설이다.
"가장 좋았던 건 뭐였어요?"
"(....) 해안가의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클램차우더 수프야. 비오는 날, 피셔먼스 워프에서 먹었던 클램차우더 수프, 그게 제일 좋았어."
소설의 시작 부분이다. 외국 출장을 다녀온 애인에게서 독특함과 함께 서운함을 느끼는 재이. 가장 좋았던 게 음식이라니.. 그녀는 이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서 '외로움'을 읽었다. 그 연민이 육체를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시켰고, 서로 의지가 되어주고 있다. 남자는 재이 앞에서 잠시도 쉬지않고 수다를 떤다. 그 말들 중 진실은 없다. 그 사실은 그도 알고 재이도 안다. 어느날 우연히 본 TV 다큐프로를 통해 이 남자가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꺼낸 이야기. 이 고백 후 아내와 아이들은 뉴욕으로 떠났다. 사실 재이에게 말한 외국 출장은 거짓이었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뉴욕에 다녀온 것이었다.
"당신을 견딜 수 없어. 모든 걸, 국을 떠먹는 모습도, 수그린 머리의 가르마도, 웃는 모습도, 잠든 모습도, 엎드려서 신문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 모든 게. 그런데 가르마라니, 내가 웃고 있을 때조차 마음 속으로는 견딜 수없어, (..) 아내가 견딜 수 없다는 점들은 모두 변경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내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p.24~26)
소설은 여자 입장에서 한 단락, 남자 입장에서 한 단락, 교차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서로의 진실과 상황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겪고 있는 극단적 외로움을, 그런 인간의 심리상태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행동과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자기를 가장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자신조차 속이는지 모두..
그리고 가족이 무엇인지,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삶을 어디까지 관여해야하는 것인지. 부모에게 자식은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는 존재이며, 또 자식은 부모를 어디까지 봉양할 책임을 가지는 것인지. 가족이 왜 필요하며, 가족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은 타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 등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함께 던져주고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졌다면 그들은 서로간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또 사랑받아야 할 권리를 동시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왜 망가지게 되는 것일까. 이기심, 허영심일 것이다. 상대의 외로움에 눈 감아 버리는 이기심. 그런 행동들은 결국 자기를 망치고 가족을 망치고 결국 사회까지 망치는 것인데도 말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것에서 사유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오늘 짧은 이 소설 한 편으로 인간 속의 인간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배가 고프다. 빈속에 커피 한 잔 마신 게 전부니. 오래전부터 냉장고 속은 텅 비어 있다. 라면을 끓여서 냄비째 들고 와 바닥에 신문을 깔아 올려놓고 자정뉴스를 보며 먹었다. 김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국물을 마시려고 보니 개미 한 마리가 동동 떠 있다. 젓가락으로 건져 신문지에 털어내고 냄비를 들어 올리니 신문지가 들러붙어 따라온다. (...) 미지근해진 국물을 마저 마시고 말끔히 설거지를 했다. 돌아오자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p.32)
"알바니아. 겨울엔 비와 진흙 때문에, 여름엔 먼지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는 곳이지만 그것보단 어디서 저격병의 총탄이 날아와 몸에 박힐지 모르는 처절한 내전의 땅이지. 그 발칸반도의 어둠이 흩어지기 전, 무거운 공기가 흔들리기 전, 자정부터 새벽 사이에 줄기를 자른, 강한 향기가 고스란이 가두어져 있는 그곳의 장미가 지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거야."(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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