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과 '일부'에 관하여
종교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하찮다.(미물이다, 죄인이다 등)
그 외 몇 가지 더 있겠습니다만,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생각난 관계로
그 이상은 별로 갑자기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제가 좀 몸만 왔다갔다하는 존재인 관계로^^;;;)
특히 '인간은 하찮다'에 집중하려 합니다.
여기서 하찮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입니다. 대부분도 아니고 일부도 아닌 '모두', 100%, 예외없이, 전부...
인간은 하찮은 존재입니다.
방송이나, 신문이나, 뭐 어쨌든 권위있는 매체나 사람들이 특히 나쁜 것을 얘기할 때,
예를 들면, 일부 학교가, 일부 교사가, 일부 정치인이, 몇몇 일부가...........어쨌다.
여기서 '일부'는 '대부분'을 얘기한다고 봅니다. 말하는 사람도 알고, 듣는 사람도 알죠.
왜 대부분을 일부라고 말할까요? 만약에 대부분의 학교가, 대부분의 교사가, 대부분의 정치인이...등등으로 말한다면, 세상 참 복잡할 겁니다. 해당되는 분들이 가만있지 않겠죠.제가 보기엔 일부라고 해도 가만있지 않던데 말이죠.
그런데 종교는 대단합니다.
일부도 아니고 대부분도 아니고 전부,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 죄인이고 하찮은 존재라는데, 듣는 사람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에 적극 동의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사실 저도 동의한답니다. 가열차게^^)
여기 무모한 책이 나왔습니다.
종교처럼 '모두'라고 말하지도 않고, 인간을 하찮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대부분' 문제라고 말하죠.
<교사, 가르고 치다>
감히 '대부분'의 교사를 비판하고 있죠. 심지어는 반성 좀 하고 공부 좀 하라네요. 학생들에게 관심 좀 가져 달랍니다. '일부'가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에게 말하는 겁니다.
두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이라는 것과 그 대부분에 저자 스스로를 포함시킨 겁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만이라도 빠졌더라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켠으로는 참담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인들, 경제인들, 법조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당하신 교사들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일부'이긴 하지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선생님들이 있고, 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교사, 가르고 치다>의 희망은 그것입니다. 희망의 선생님들과 희망의 아이들이 이 '대부분'의 세상을 그들의 '대부분'의 세상으로 바꿔주는 것이요.
너무 격한가요?^^
김준산 선생님. 힘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