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쏘아댄 포격으로 연평도가 불타고 있었다. 또 터졌구나 또 당했구나…. 십여 명의 병사가 중경상을 입고 꽃 같은 나이의 두 해병이 전사하고 육십 줄의 두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텔레비전 뉴스에 비감을 삼켰다.

당장 불안했다. 섬 주민들의 피란 행렬이 줄을 잇는 화면을 응시하며 이럴 수는 없다고 분노했다. 남쪽의 선제공격을 운운하지만 수많은 도민이 고기를 잡고 땅을 갈며 사는 줄 뻔히 알면서 백오십 발의 대포를 쏘다니.

처참하게 부서진 집과 마을을 놔둔 채 황급히 섬을 비우고 떠나온 사람들의 겁먹은 표정에 지난날의 전란마저 겹쳤다. 등 굽은 할머니의 지팡이에서, 엄마 손을 꼭 잡은 아이의 눈에서 6·25를 떠올린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다 아는 대로 연평도는 휴전선에 가까운 서해 어장의 중심이다. 전남 영광군의 칠산 앞바다와 함께 조기철 파시로 유명한 곳인데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말로만 들었거늘 어쩌다 남북대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기막힌 참변을 당했다.

앞으로도 북의 무모한 도전이 더 계속될지 모른다는 예측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북은 우리의 그만큼 경황없는 심리적 혼돈을 기왕의 경험으로 미리 안다는 듯 큰소리를 땅땅 친다. 이판사판 억척을 떤다. 사소한 예로 치부하면 그만이되 이를테면 평양방송 진행자의 시퍼렇게 날이 선 어투가 더없이 강퍅하다. 들어 버릇해서 그러려니 여기지만 한복으로 곱게 차린 여성 앵커의 연설조 의음(擬音)에 소름 돋는 날도 있다. 
 

그런 식으로 체제를 굳힌 지 육십 년도 넘는 사회를 나라 안팎의 북한 전문가들이 별별 궁리를 다하여 수소문하고자 기를 쓴다. 하지만 치고 빠지기 잘하는 측에서 불쑥불쑥 내미는 황당한 ‘과제’를 검색하기 바쁜 모양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한낱 서생이 무얼 알까마는 소박한 눈치로 바라보면 그렇다. 대통령의 초기 지침에 대한 말바꾸기 논란은 한층 민망스럽다. 낮과 밤이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저런 발언에는 아닌게아니라 요령부득인 것이 많다. ‘G20’을 전후하여 난데없이 등장한 ‘국격’ 또한 모호했다.

내 독단임을 전제하고 말하건대 그와 같은 발제는 혹시 몇 년 전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국가의 품격>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아니라면 미안한 노릇인데 그 책은 지극히 단순하고 편협하다. 다른 계제에 이미 썼지만 국수주의도 그런 국수주의가 없다. 이 세상에 일본이 제일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스스로 들려 싱겁다.

그야 어떻든 우리 사회는 이번 사태를 놓고 외치는 일전불사 수준의 용감한 소리가 마구 쏟아져 판을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미리미리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큰 축일수록 남의 의견에 너무 날카롭게 신경을 쓴다. 막상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동곳을 빼기 쉽다는 비아냥이 예전부터 떠돌았던 걸 상기한다.

따라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격앙된 정세를 틈타 행세할지 모를 억지 국론통일 분위기 말이다. 실컷 체험한 잘못된 구습이다. 쑥대밭이 된 연평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슬픈 분통에 편승하여 여론을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갈까 무섭다.

다행히 경제는 순조롭고 남북 분란에 어느덧 면역이 된 사람들은 생업에 열중하여 차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국민을 달래고 안심시켜도 시원찮은 고위 인사들의 늦게 잡고 되게 치는 모양이 안 좋다.

생사람을 해치고도 도도하기 짝없는 저들의 늘 오만한 콧대를 꺾고 싶은 심정은 다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냉철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 맥 빠지게 들릴지언정 그게 곧 민주국가의 힘 아닐까. 응징할 때 응징하더라도 지금은 긴 눈으로 나라의 앞날을 겨냥해야 한다고 믿는다. 확전을 피하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게 수다. ‘화약고 발칸반도’ 아닌 ‘화약고 한반도’ 소리를 면하기 위해서도.

(한겨레 신문) 최일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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