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노의 비가

                                                릴케

내가 설령 울부짖는다 해도 여러 서열의 천사들 중 누가
이 소리를 들어줄 것인가? 만일 천사가 하나
갑자기 나를 가슴에 끌어 안는다면 그 강한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리라.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겨우 견딜 수 있는 무서운 일의 시초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그토록 찬탄하는 것은 우리를 멸망시킴을
잠잠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천사는 모두 무서운 존재.
그러므로 스스로를 억누르며 어두운 오열이 유혹하는
부름을 나는 그저 삼켜버린다. 아, 우리는 그 누구를
부릴 수 있는가? 천사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릴케 두이노의 제 1 비가 중 (릴케 문학선, 두이노의 비가 외, 구기성 번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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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구절에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강력하게 사로잡는 시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독일인이 독일어 원문을 읽고 느낄 파워가 한국어 번역으로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이 번역으로도 두이노의 비가  서두는 충분히 마음의 깊은 곳에서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느낌을 유발한다.

사실 난 오랬동안 릴케를 참으로 부당하게 평가해왔었다.
어릴 때 인물사전에서 본 '장미꽃에 찔려 죽은 연약한 시인'이라는
말이 각인되었던 탓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접한 두이노의 비가는 이러한 선입관을 깨기에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번역의 한계를 고려해도 말이다. 나는 여기서 강한 역설적 진실을 느낀다.
천사는 완벽한 존재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 대상이다.
그러나 릴케는 말한다. 그 어느 천사도 내 울부짖음을 들어주지도 않을 뿐더라
설령 나를 끌어 안는다고 해도 그 '강한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고 말것이라고.

이 구절에서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불완전함은 완전함보다 상위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어떤 과정이 완전성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바로 소멸해 버리고 만다. 완전한 존재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불완전하기에 운동이 있고 운동이야 말로 우리의 생생한 현실태인 것이다.

릴케는 말한다  '천사는 무서운 존재'
천사의 완벽성은 결국 소멸이요 죽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존재는 무엇인가?
"인간도 천사도 아니다." 

천사가 아님은 앞의 해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인간도 아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완전한 존재로서의 천사가 그 완전성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면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불완전성 때문에 부릴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천사와 인간 모두 부릴 수 없는 대상이지만 그 맥락은 다른 것이다. 결국 천사의 부정은 불완전한 현실에 대한 긍정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지만 불완전은 역시 불완전인 것이다. 

현존재는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무생명적인 물질 세계인 것만도 아니다.  현존재는 맹목적인 흐름속에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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