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그래도 가장 인간적인 믿음이 가는 정치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노회찬과 심상정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진보신당에 대해 비판적인데, 진보신당의 정치인들이 작은 명분에 집착하여 큰 틀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고 진보신당 극렬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독선과 냉소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진보'라는 말에 좀 회의적이다. 개인적으로 인류의 역사라는 건 치세와 난세의 순환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진보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한 직선적인 발전사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민노당 시절부터 소위 '진보세력'에게 최소한의 표를 주지 않은 경우는 없었는데 진보를 믿어서가 아니라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에 의해 복지를 확대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이 땅에도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를 든다면 진보세력에게는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매력적인 정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받은 지식인으로서 밑바닥 노동운동에서부터 현재 대중 정치인까지 쌓아온 이들의 삶의 역정은 내가 구구한 언설을 붙힐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치열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현장에 뛰어들었고 희생되었고, 중도 포기를 했고, 변절을 했지만 이들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면서도 꿋꿋하게 운동가에서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해 왔다. 운동가 시절의 신념과 가장 대극에 있다할 한나라당으로 투항하고 만 민중당 이재오가 한 말 중에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나는 민중을 사랑했지만 민중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배신감에 대한 복수가 한나라당 행이고 현재 그가 보여주고 있는 추한 행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재오는 김문수와 더불어 그 변절의 댓가로 권력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역사는 노회찬과 심상정을 더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오늘 진보신당의 한 축인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가 사퇴를 했다. 그가 울먹이며 하는 기자 회견 동영상을 찾아서 보니 마음에 무엇인가가 짙은 감동이 느껴진다. 본인도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열정적인 지지자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후보를 사퇴한다는 건 참으로 힘든 결정이었으리라. 그는 이야기 했다. 노회찬 후보는 당 대표이기에 자신이 대신 총대를 매고 MB 심판에 대한 다수의 여론을 받아 안겠노라고. 자신이 진보 정치에 대한 신념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사실 후보사퇴가 현재의 한국의 민주주의가 매우 비상상황임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나는 이것이 새로운 실험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해본다.  87년 이후 선거때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후보단일화는 주요한 이슈가 되어왔지만 내 기억으론 주요선거에서 '진보정당'이 후보 단일화에 응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뜨거운 논의와는 달리 진보정당과의 단일화가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민주당 세력이 이기는 선거에서는 단일화 없이도 이겼고 지는 선거에서는 단일화를 했어도 졌던 것이다. 역사는 오히려 DJP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같이 보수세력간의 단일화가 파괴력이 있음을 예증해 준다. 

민주당 세력의 입장에서 진보정당과의 후보단일화 이슈가 결과적으로는 미미한 역할만을 했다면  후보 단일화에 번번히 응하지 않았던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던가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진보정당이 단일화에 응하지 않은 것은 선거를 통해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론 진보정당이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얻은 것도 별로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의 흥망역시 민주당 흥망의 종속변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 진행과정이다.  

이번 심상정 후보의 사퇴는 역사상 최초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단일화 실험이다. 노회찬 후보가 대표라는 상징성 때문에 사퇴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진보 신당의 기둥 중의 하나인 심상정 후보가 사퇴를 함으로써 진보신당도 결국은 반 MB라는 대의에 동참한 것이다. 즉 상징적으로는 노회찬 후보도 사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이 단일화의 성패가 향후 정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자면 심후보의 결단은 적어도 진보신당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유시만 후보가 당선될 경우, 심후보의 사퇴는 역사적 결단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유시민 후보가 낙선할 경우에도 향후 선거에서도 계속될 단일화 논의에 대한 비판의 준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고 향후 정계 개편(혹은 연합선거, 연정)에서도 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도  유시민이 당세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김진표를 꺽고 단일 후보가 됐다는 것이 대중정치인인 심상정에게는 향후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노회찬 후보가 심상정 후보의 사퇴를 만류했다고 하지만 그도 아마 사퇴의 모험을 강행할 필요를 느꼈을 것 같다.

향후 역사의 진행방향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사고들를 재반성하고 새로운 개념과 이론들을 주조해야할 만큼 새로운 상황인 것이다. 심상정의 눈물로 상징되는 유래없는 보수 진보의 단일화가 긍정적인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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