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윤경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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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정말 오랜만. 탐정 클럽의 유명한 탐정이 의뢰받은 거물급 인사들의 사건을 해결한다는 줄거리인데, 다섯 펀의 사건들의 설정이 괴이하고 그 결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생일 파티 날에 목 매단 시체로 발견된 사장, 그런데 그의 죽음을 은폐하려 일을 꾸미던 주변일당들 모르게 시체가 사라진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고아가 된 조카를 아들처럼 돌봐주며 키웠던 부자노인이 욕탕 안에서 감전사한 시체로 발견된다. 방과후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가 침대 위에서 피투성이 시체로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여고생이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하기도 한다. 임신한 둘째 딸을 추궁하며 아이 아빠를 찾던 대학교수 집에서는 엉뚱하게도 관련없는 큰 딸이 살해당한다. 무척 엉뚱하면서도 미궁속일 듯해 보이는 사건들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음모와 불륜, 치정이 얽혀있다. 이야기 속의 범죄자들은 보혐금을 위해서, 상속을 위해서,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 옛 스승의 복수를 위해서 죄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도 잔인함의 한계도 없다. 어쩜 이런 플롯을 구성할 수 있는건지.

일본이름이 워낙 비슷비슷해서 이야기마다 엄청나게 많은 등장인물들 구별해가면서 읽으라 고생을 좀 했다. 약간 아쉬운 점은, 단편들이라 그런지 이야기 중반까지는 개연성도 있고 흥미진진했는데 막편에 너무 단번에 답을 던져주고 끝내버리는 듯 해서 김새는 느낌도 있긴 했다. 그래도 한동안 읽지않았던 탐정물에 다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책이었다는.

#장미와나이프 #히가시노게이고 #반타 #탐정소설 #단편집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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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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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와 자연, 환경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책들을 그동안 적잖이 읽어봤는데, 그중에서 제일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책 같다. 실험하고 연구하는 학자였다가 직접 야생을 찾아가 기록하고 알리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이야기의 장마다 연결도 매끄럽고, 정보 또한 풍부하다. 다른 책에서 읽은 정보들이 하나로 꿰어맞춰지는 느낌이랄까. 생태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보여주며 존경심과 경외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특히나 신기했던 정보는 생태계의 가장 말단에 있는 잘 보이지도 않는 균류들에 대한 것이다. 토양 속의 균근이 광범위한 상태계 상호 연결 시스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균류는 ’글로말린‘이라는 끈적끈적한 단백질을 생성하는데, 글로말린 하나만으로도 토양 속에 있는 모든 탄소의 3분의 1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기 중 탄소 오염의 상당 부분을 토양 속에 격리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얼마전에 읽은 수잰 시마드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에서 읽었던 대로 나무들 사이의 지하 통신망의 핵심이 되는 것 역시 균군이다. 이 책 7장 생물권 부분에서 수잰 시마드 이야기가 나와서 너무나 반가웠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 신으로부터 그런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오만함은 성경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는데, 최근 종교계에서도 그런 태도에 대해서 명확히 반대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파리에서 열렸던 기후변화 화의를 앞두고 발표했다는 회칙의 내용이다.

“ 물질계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애정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물질계를 무지비하게 파괴하는 것은 죄악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

책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놀라운 예도 등장한다. 최근 뉴질랜드의 황가누이강은 현지 마오리 부족이 제기한 법정 소송 끝에 2017년 의회의 결정으로 인격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지역 마오리 지도자인 제라드 앨버트의 말이 너무 인상적이다.

“ 우리는 우지의 기원까지 우리의 족보를 추적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계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다. 우리는 그런 삶을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

생태계는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파괴를 멈추고 그저 출입을 금하거나 보호 구역으로 설정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저자는 생태계의 ‘재야생화‘를 주장한다. 재야생화는 생태적 천이를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생태계의 탄소순환에 대해서 다시한 번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 자연계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균형을 깨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페이지마다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다른 예를 가지고 등장한다. 원색적이거나 감정적인 비난이 아닌 증거와 사실에 입각한 설명임에도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죄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 다른 종들은 폐기물을 생성하거나 축적하지 않는다. 비인간 생태계에서는 모든 것이 재사용되거나 용도가 변경되기 때문이다. 자연계는 완벽한 순환 경제로, 모든 것은 수명이 다한 후에도 다른 것의 원천이 된다. “

자연을 자연그대로 보존하며 잠깐 빌려쓰고 되돌려놓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하는 챕터,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팬데믹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마지막 챕터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생태교과서 같은 책이었다. 뒤에 첨부된 생생한 사진자료들 또한 너무나 인상적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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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윤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칭 세계의 중심에서 벗어나 더 큰 생물권의 겸손하고 존중하는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것은 우리를 <자연계 위>에서 <자연계 안>으로 이동시킨다. 우리는 지능이 더 높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생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우리의 지성과 공감을 사용하여, 다른 모든 생물의 존재할 권리를 보호해야 할 때다. 그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금전이 아니라, 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겨오이감과 경이로움이어야 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 | 엔리크 살라

#자연그대로의자연 #엔리크살라 #열린책들 #재야생화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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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화산도 (총12권)
김석범 / 보고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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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세월, 신념에 따라 당당하게 나아갈 수도 억울하게 짓밟히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있을 수도 없었던 한 제주 사내의 이야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실존했던 한국사의 한 장면을 내 피부가 찢기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혼란스러웠던 해방이후 미국과 소련 사이의 이념논쟁에 이용당했던 대한민국. 거기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발악하듯 죄없는 우리네 사람들을 들어먹고 찢어먹고 급기에 목을쳐서 죽창에 내걸어 전시하던 시절이었다. 몰랐던 사실들이 너무 많았고 어림으로 상상해보는 것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막힐 정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을 죽이고 헤치는 장면에 무뎌지고, 스스로 파괴되고 있다는 절박감이 엄습해오는 상황이라면. 내 총구 앞에 내 죽창 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앞에 씌인 망령들을 걷어내야 했거늘. 그런 여유도 이유도 찾지못했던 불행한 시절이었다. 아니, 스스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괴롭힌 악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화산도> 이후의 이야기가 <바다 밑에서>라는 제목으로 나와있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주문해두었다. 이방근 자실이후 1년쯤 지난 시점, 일본으로 돌아가있는 남승지 주변의 이야기라는데,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12권의 장편대하소설을 읽고나니 제주도가 그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 곳을 바라봐도 눈물부터 날 듯 싶고. 그전과는 다른 의미로 제주에 가고싶다.

#화산도 #김석범작가 #화산도완독 #보고사 #제주43 #제주43항쟁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바다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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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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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질에 대해, 여자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파시스트들이 저지른 비열한 수법에 대해, 자신의 가문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핑계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협잡과 타협, 그리고 거기에서 희생되는 힘없는 존재들에 대해 일깨워주는 소설. 62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었지만, 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 모든 바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안에 존재했던 사랑하는 누군가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처지를 확실하게 하고싶은 욕망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겠으나 악마와 거래하면서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넘기는 실수를 할 수 없다는 사실, 진정한 예술로서의 조각은 주렁주렁 꾸미고 덧붙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낼 수 있을 때까지 덜어내고 깎아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가르침, 자기 본연의 모습은 억지로 결심하거나 꺾으려해서 꺽이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여자이기 때문에 단절되고 억압될 수는 없다는 엄연한 진리. 그런 진리가 진정한 예술로 구현되었을 때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강렬한 반응을 불러온다.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를 본 사람들이 느꼈던 것처럼.

관람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압박감, 심장고동의 이상증상, 현기증, 우울감 등 이상증상을 느끼게 한다는 비탈리아니의 피에타. 교황청은 이 작품을 한 수도원 지하에 누구도 볼 수 없게 숨긴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한때 파시즘을 선전하는 작품에 관여했다는 과오 때문인지 지금 남아있는 작품들도 거의 없는 상태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종적을 감춘 상태다. 작품과 작가를 숨겨둔 파드레 파첼리의 이야기와 작품이 탄생하기 전과 직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흥미를 더한다.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소속된 가문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반항했다 좌절하기를 거듭하던 여자 비올라.
읽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책과 신문을 통해 엄청난 지식과 과학적 이론을 축적하고 하늘을 날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어릴 때 발견한 어미잃은 아기곰을 돌보며 비밀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가문이 정한 결혼을 거부하며 창밖에서 뛰어내려 큰 부상을 당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항하지만, 어쩔 수없이 가문이 정한 남자와 결혼한다.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조각하는 재능을 가진 가난한 천재소년 미모.
어릴 때 가난 때문에 어머니와 헤어져 홀로 이탈리아에서 도제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재능 때문에 시기와 질투가 이어지고 마을의 유력가문 오르시니 가의 아들 스테파노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고난이 이어진다. 그에게 경악과 충격을 준 신비로운 소녀 비올라를 만나면서 새로운 책과 언어를 배우고 그녀를 동경하는 마음때문에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때문에 그의 재능을 이용하려는 파시스트 정부에도 기꺼이 협력하고 결국 자신을 무시했던 오르시니 가문에서도 인정을 받게된다. 그런 모습에 경악하는 비올라와 번번히 충돌하지만, 비올라가 위태로울 때 언제나 먼저 손을 내민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사제가 되어 종교의 줄을 타는 비올라의 둘째오빠 프란체스코.
모든 선택은 가문을 위한 것. 이를 위해서 어떤 희생도 어떤 협잡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악하게도 똑똑하고 고집센 여동생 비올라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모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 미모의 재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비올라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간파한다.

출세를 위해 파시스트와 어울리며 권력으로 나쁜 짓을 서슴치않는 세째 오빠 스테파노.
전쟁에 지원했다가 어이없는 열차사고로 죽은 가문의 큰아들의 그늘에서 늘 비교당하면서 살았던 억한 심정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나쁜 짓만 하면서 자랐다. 파시스트들이 망한 후 여동생이 선거에 나가겠다고 선언하자 경쟁하던 감발레 가문과 협잡하여 가문의 이익을 위해 형 프란체스코와 함께 여동생을 주저앉히고자 미모를 이용한다.

제법 두껍지만, 미모와 비올라 사이의 징글징글한 애정관계와 프란체스코와 스테파노의 가문의 영광을 향한 지독한 욕망에 집중해서 읽으면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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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정하라고 명령하더니 자신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악의 아름다움은 바로 악이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결코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악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녀를 지키다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그녀를지키다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열린책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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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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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범죄나 가정폭력, 강간 등의 인면수심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감동하고 좋아했던, 혹은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과연 이런 우리의 사랑이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를 계속 캐묻고들어가는 약간 읽기 불편한 느낌의 책이다. 비단 미투운동 등에 얽힌 성문제가 아니더라도 여성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가족을 등한시 했다든가 아이들을 놔두고 자살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악마적’이라고 비난받는 여성작가들의 예를 들기도 한다.

이와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오래전에 김훈작가가 ‘내 새끼 지상주의’라는 르포성 기사를 쓴 이후에 그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적잖이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의 작품을 더 이상 읽지않기로 했다는 독자들의 의견이 꽤 있었지만, 금번 사태에 대한 유감과는 별개로 김훈의 작품을 사랑하고 그의 문체를 애정하는 독자로서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않겠다는 취지의 글을 쓴 기억이 난다.

이 책 <괴물들>에서는 주로 성범죄와 관련된 경우가 많이 거론되는데, 도대체 불편하기만 하고 답도 없는 이런 질문을 왜 책으로까지 만들어 써가며 하는 걸까 읽으면서 내내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고없고와는 상관없이 그저 입밖으로 내놓는 것에서부터 문제해결이 시작될 수 있는 문제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떻게든 다루어야 한다. 단순히 ‘취소’를 누르는 것만으로는 괴물도, 괴물에 대한 우리의 갈 곳 잃은 감정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얼룩으로 계속해서 이런 질문과 담론을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희망한다. 우리의 사랑이 그들의 권력이 되지 않기를. __한정원(시인, 『시와 산책』 저자) ”

작가는 ’괴물같은 짓을 저지른 예술가들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하여 ’사랑할 수 없을 것같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으로, 급기야 ’나도 누군가에게는 괴물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랑은 철저한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단을 옆으로 유보함으로써 얻어지는 무정부상태의 혼돈“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 우리가 사랑하는 이 끔찍한 사람을 어떻게 할까? 이 질문은 그 안에 내재한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나는 얼마나 끔찍할 수 있나? 얼마나 끔찍할 때 사람들이 나를 그만 사랑하기로 결심할까? ”

“ 다시 말해서 사랑은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판단을 옆으로 유보하는 결정에 달려 있다. 사랑은 무정부 상태다. 혼돈이다.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성이라는 차가운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기후 시스템인 감정적 논리에서 결점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한다. “제발 다음에는 그의 인품과 성격이 그의 음악만큼 사랑스러워져서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저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

내가 느낀 책의 결론은, 내가 느끼는 사랑이란 ‘범죄를 저지른’ 작가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감동을 준’ 작품 자체와 나 사이의 문제라는 것, 완벽한 인물에게서 완벽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 그리고 우리도 변하고 작품과 우리의 관계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관계 또한 성장하면서 변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거나 사랑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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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하고 작품과 우리의 관계도 변한다. 권위에 또다시 대항할 수 있다. 클리지는 마일스를 사랑하다가 미워하다가 이제는 조금 다르게, 알면서도 사랑한다. 우리의 관계 또한 성장하면서 변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거나 사랑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티븐 프라이는 바그너를 사랑하고, 나에게 데이비드 보위를 들어도 되냐고 묻는 대학생들은 데이비드 보위를 사랑하고, 나는 폴란스키를 사랑한다.
이 사실들이 이상적이지도 않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괴물들 | 클레어 데더러, 노지양 저

#괴물들 #클레어데더러 #을유문화사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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