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윤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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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었던 시절에 여성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심지어 이런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번듯한 작업실 하나없이 오픈된 거실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원고를 감춰가며 몰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니. 우리가 사랑하는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같은 작품이 바로 그런 환경에서 완성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느낌이 참 다르게 다가온다.

19세기를 거쳐 20세기를 넘어오면서도 여류작가로 글쓴다는 것은 마치 끝없는 장애물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었을 듯. 저자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그녀들에게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주어진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펼쳐졌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해진다.

젊은 여대생들 앞에서 성공한 선배작가로서 해주고 싶은 말, 바라는 말들을 꽤나 구구절절 길게도 썼다. 한 문장이 너무 길다.

결론은, 요즘같은 시대에는 예전과 달라서 여자라서, 500파운드가 없어서, 자기만의 방이 없어서 훌륭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부디 힘내서 멋진 작품 많이 써주기 바란다— 뭐 이런 결말.

저자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것이 뭘까 생각했다.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나다움’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무대‘ 혹은 ’분야’의 의미가 아닐까. 지금이라면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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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앞으로 1백 년쯤 더 살고―개개인의 짧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 공동의 삶―매년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용기와 자유로운 습성을 갖는다면,

또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에서 벗어나 인간을 서로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성과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하늘이든 나무든 모든 사물을 그 자체로만 본다면,

아무도 떨쳐낼 수 없는 밀턴의 악령 너머를 본다면, 또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팔은 없으며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직면한다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테고, 셰익스피어의 누이동생인 죽은 시인은 스스로 몇 번이나 내던진 육신 속에 다시 깃들 거예요.

그녀는 오빠가 그러했듯이 이름 모를 선구자들의 삶에서 자신의 생명을 받아 태어날 거예요.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정윤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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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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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유정 작가 때문에 또 밤잠 설쳤다. 또 한 편의 소름끼치고 잔혹한 영화같은 소설. 2021년 착품인데 이걸 이제야 읽다니.

정유정작가 작품에는 다양한 싸이코패스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 속 그녀는 정말 그중에서도 갑인듯.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것도 가족이거나 가족이 될 뻔한 사람들을… 특히 자기 딸에게 행한 짓은 정말 천벌받아도 갚지 못할만한 것이어서 그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한다. 기갈난 사람처럼 무작정 쫓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행복을 위해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밀치고 쳐내도 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행복을 더하기로 생각하며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으로 볼 것안가, 아니면 나쁜 것들을 하나씩 없애면서 완벽해지기를 추구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작가가 던지는 물음이 답하는 것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에 놀랬다. 제거하는 것처람 단순한 노력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한 번 해 볼 만 하지 않을까 솔깃해지는 것이 사실이라.

내 속에 가려진 진짜 마음을 대책없이 드러내게 만드는, ‘내가 만든 착한아이의 모습’ 이면에 숨어있는 솔직한 내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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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완전한 행복 | 정유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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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구작가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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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 구경선(구작가)

2살 때부터 열병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 나이가 들어서는 갑자기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 구경선씨의 이야기다. 싸이월드 스킨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동화작가로 자리잡기까지 개인적인 어려움에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않고 꿋꿋하게 견디며 사는 모습을 그림과 함께 책 속에 담았다.

하얀 토끼 베니가 구작가의 메인 캐릭터인듯. 너무 귀엽다. 3월의 시작을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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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리커버)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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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칼로 찌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헤치는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너무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바람에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초대’ ‘습지의 사랑’ ‘칵테일, 러브, 좀비’ ‘오버랩 나이트, 나이프’ 이렇게 네 개의 단편들이 묶여진 책인데, 대부분 신비롭고 충격적인 내용에다 설정 자체가 기상천외하다. 뱀술을 먹고 좀비가 되다니. 17년간 목에 생선가시가 걸려있다는 것도 그렇고, 가족들끼리 시간을 돌려 회귀하면서 서로를 없애려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모처럼 쇼킹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이 보고싶으시면 추천. 짧고 재미있다. 선혈이 낭자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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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가느다란 손가락 두 개가 입속을 침범했다. 그것은 입천장과 혀뿌리 너머 아주 깊숙한 곳까지 닿았다. 신기하게도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한순간 목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일었고, 나는 뒤늦게 밀려오는 구토감에 상체를 숙였다. 내장까지도 토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로 물든 바닥을 짚고서 한참을 기침했다. 이윽고 알싸한 통증과 함께 무언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건, 가시였다. 하얗고 하얀 가시. 정말로 그것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들, 있는 것도 그냥 없다, 없는 것도 있다 하고 사는 거죠.”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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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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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10년동안 복역하며 굶주림과 심한 노동에 시달린 주인공 슈호프. 그는 극한의 경험 속에서도 절대 자기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식사시간엔 꼭 모자를 벗고, 주어진 노역도 성실하게 해낸다. 다른 수감자들과도 존중하며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그에게는 별 일 없이 보낸 무사한 하루하루가 그저 고맙고 기쁘다.

수용소 안에서의 하루하루 기록이 이 작품의 내용 전부다. 그냥 너무 착하고 우직하기만한 주인공이 안쓰럽다가 답답하다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에는 슈호프 자신도 자기가 정말 감옥밖을 나가 자유롭고 싶어 했었는지조차 의심할 정도가 된다.

작가 솔제니친은 일상적인 수용소 안의 기록을 통해 전세계에 소련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가림이나 거름없이, 온건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그러나 노골적으로 그려냈다. 억압 아래에서 서서히 적응하고 마침내 저항할 마음마저 잊게만드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이 아닐지.

죄와 벌, 대위의 딸,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후 간만에 읽은 러시아 소설이었다. 세계 어느 곳, 어느 시절에나 힘들고 극적인 영화나 소설같은 상황들이 있었겠지만, 러시아 문학 속에서 본 그들이 삶은 그중에서도 꽤나 견디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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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 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3613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영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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