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 압살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9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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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읽고나서 웃기고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인줄 알았더니 이번에 읽은 <압살롬, 압살롬!>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미국의 제임스 조이스’라고 하더니, 역시 단번에 이해하기엔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면이 많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노예제도 속 미국 남부 백인사회의 추악한 현실, 백인남자들에 의한 흑인여성 성착취, 그러면서도 흑인의 피가 자기 가문에 섞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운 거부감 등이 주로 다뤄지고 있다. 미국 남부의 한 마을에 미스테리한 백인남자 토머스 사트펜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후에 갑작스런 살인사건, 몇 대에 걸친 관련인물들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복잡해지면서 흡사 추리소설 읽는 듯 독자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소설의 힌트들을 던져주며 이야기를 꿰어맞추도록 한다.

예전에 페트릭 스웨이지가 출연했었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남과 북>에서 였던가?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 부유한 거대농장의 주인과 결혼했었는데, 흑인아이를 낳는 바람에 비밀리에 아이를 빼돌리고 쉬쉬하는 장면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이게 무슨 상황이었던가 궁금했는데, 이후에 <패싱>같은 소설을 읽고보니 이해가 됐다.

작품 뒤에 추가된 ‘계보’를 훑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가족관계가 얼기설기 복잡한지. 사건의 발단인 ’토머스 사트펜‘은 ’흑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장인의 말만 믿고 결혼했던 부인에게서 흑인자녀를 보게되자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이혼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가난하지만 젊잖은 백인가정의 조신한 딸 엘렌과 다시 결혼한다. 그는 엘렌과의 사이에서 헨리와 주디스라는 남매를 낳는다. 대학에 간 헨리가 사귄 찰스 본이라는 남자가 주디스와 약혼하려는 것을 서트펜이 반대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서트펜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사 년 후 헨리가 찰스 본을 살해하면서 새로운 비극이 닥쳐온다.

가난하고 불우하게 자란 사트펜은 큰 부자가 되어 자신의 아들에게 거대한 농장을 물려주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 아내가 병으로 죽고 아들도 살인사건에 연류되어 행방불명된 상황에서 심지어 처제에게 청혼했다 실패하기도 한다. 초조해진 사트펜은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급기야 자신의 수하 워시 존스의 어린 손녀를 임신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딸을 낳았지만 하루만에 사망한다. 이렇게 추하게 이어오던 사트펜 가문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는 자손은 결국 백인보다는 흑인의 피가 더 많이 섞인 존재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사트펜 가문의 몰락은 결국 노예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거리낌없이 흑인들을 착쥐하면서 부조리한 행태를 거듭하던 추악한 남부사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 토머스 사트펜의 자손들인 찰리-헨리-주디스 사이의 근친상간 위기와 살인사건 과정이 설명된다.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결혼을 강행하겠다고 주장한 헨리가 남긴 사진 펜던트 속에는 헨리의 흑인 정부와 아들의 사진이 들어있었다는 사실 또한 경악스럽다. 그 사진을 주디스에게 남긴 헨리의 마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자기의 죽음을 통해 흑인사회에 미안함을 표하고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이렇게 오래되고 뼈속깊이 새겨진 흑백인종간의 지난한 역사, 깨끗하게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흑백갈등에는 분명 드러내놓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없애기도 어려운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럼에도 윌리엄 포크너처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계속되어야 할거라는 지지도 함께 하게 된다. 대단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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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명예도 긍지도 없고, 사 년 전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후로는 신도 없습니다. 신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신발도 의복도 없고, 그것들을 가질 필요도 없고, 곡식을 거둘 땅도 없거니와 식량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리고 신도 명예도 긍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다만, 승리이건 패배이건 아랑곳없이 생존만을 위해서 숲 속이나 들판에서 나무뿌리와 풀을 파헤치는 옛날의 지각 없는 육체뿐입니다.

압살롬, 압살롬! | 윌리엄 포크너, 이태동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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