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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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토록 아름답고 절절한 상실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9.11 테러로 아빠를 잃은 소년 오스카가 우연히 발견한 꽃병 속 열쇠를 가지고 아빠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리고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을 잃고 말까지 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숨바꼭질 같은 사랑이야기. 소설은 이 커다란 두 가지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면서 알쏭달쏭 퍼즐을 맞춰가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지루하지 않게 사진과 낙서들, 빨간펜으로 수정된 원고들이 사이사이에 첨부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내일이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상실하고만 사람들이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한 가지였다.

“ 오스카.
내가 모든 것을 잃기 전날 밤도 여느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단다.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결이 다른 상실. 아빠를 잃고나서 방황하는 자신과는 달리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고 잠깐씩 웃기도 하는 엄마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는 오스카. 그는 사실 무너져가는 빌딩안에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아빠에게 차마 답하지 못하고 그냥 있었다는 사실을 혼자서만 꼭꼭 숨기고 마음의 상처로 담고있던 소년이었다.

이후에 아빠가 마지막 순간에 ‘건물 밖으로 나왔으니 안심하라, 집에 가고있는 중이다’라는 거짓 안부전화를 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오스카는 자신과 비슷한 비밀을 안고 끙끙댔을 엄마를 측은해하며 동병상련의 마음이 된다.

상실이 그저 비탄으로 끝나버리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상실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창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론 아저씨와 서로 위로하며 친구가 된 오스카의 엄마도 그렇고, 아들의 상실로 헤어져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시 만나게 되는 사건도 그렇고.

마지막에 무너지는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누군가의 연속사진을 거꾸로 돌려보며 그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구현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그저 사진만으로 눈물 폭탄, 감격의 도가니를 만들어 낼 줄 이야. 오스카처럼 상실을 비탄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비상하는 계기로 삼아 다시 일어서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어쩐지 오래전에 가슴 뛰면서 읽은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작가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니콜 크라우스가 부부였던 당시에 집필된 소설이었다는. 이후에 둘은 이혼했지만, 정말 당시에 미국 문학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작가 커플로 유명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알고보니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도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작품이었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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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지금 「모나리자」를 그린다든가, 암을 치료한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그저 모래 알갱이 하나를 1밀리미터 옆으로 옮기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요?”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그때까지 흘러왔던 대로 죽 진행되었을 테지…….” “으흠?”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한다면, 그러면……?” 나는 침대 위에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가짜 별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제가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을 바꾼 거예요!” “바로 그거야.” “제가 우주를 바꿨어요!” “네가 해냈어.” “전 신이에요!” “넌 무신론자잖아.” “전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침대 위로 펄썩 쓰러져 아빠의 팔에 안겼다. 우리는 함께 신나게 웃어댔다.

개정판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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