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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수필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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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에는 일상에 얽힌 에세이, 뒷부분에는 동양화론이 실려 있다. 문예지 <문장>을 주도했던 한사람답게 격조있으면서도 가벼운 걸음의 문장들이 감탄스럽다.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예술인으로서 가졌던 고민과 통찰이 궁핍하고 남루한 일상의 언저리를 더듬으며 생기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뭔가 목마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 대해 더 궁금하다. 1930년대와 40년대 지식인들의 일상의 내부가 투명한 스케치 이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근원 김용준, 오원과 단원을 흉내냈다는 의심을 사면서도, 흉내 잘내는 원숭이와 가깝다는 뜻에서 근원이란 호가 좋단다. 별다른 의미가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뒷부분의 화론들은 정색하며 읽었다. 약전 형식의 장승업론, 최북과 임희지 등...동양화론이나조선조 화가들에 대한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당시 고전과 화론 일반에 대한 이만한 지식과 통찰은 얼마나 소중하고도 드문 목소리였을지.

정지용이 "무릇 시인이 동양화론에 바탕하면 비뚤은 길에 들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가 김용준에 일정하게 영향받았다는 것은 익히 다 아는 사실일진대, 그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동하게 하는 오랜만의 가벼운 독서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의 문장과 그 문장들의 무게가 기억에 남는다. 김용준의 표현(그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혁의 육법이나 곽희의 <임천고치> 등 고전 화론의 어법이지만)을 빌린다면, '방일'하면서도 '표일'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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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토피아를 향한 생명시학 - 문학연구총서 19
송용구 엮음 / 시문학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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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태시에 대한 입문적 평론들을 모아 놓은 책.

7-8명의 저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터라, 편차가 심해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저자들이 유럽문학 전공자들이라 그런지, 유럽 생태시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고, 중복되기도 한다.

생태론과 유교, 노장의 자연관의 연관을 밝힌 문덕수의 글은, 아직 활발히 전개되지 않은 이 분야에 있어 뛰어난 논문이다. 다만 그리 깊이는 보이지 않는다. 큰 흠은 아니다.

생태주의와 문학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이념으로서의 생태론과, 미학으로서의 문학의 양립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이든 회의적이든, 이 책의 글들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 한계와 가능성들을 가늠할 수 있다.

편집이 좀 촌스럽다고 할까, 성의가 없다고 할까. 읽기에 성긴 글들도 적지 않은데, 깔끔하지 못한 편집과 약간 어울린다.

미리 말했듯이, 좋은 글과 별로 안좋은 글과 그런대로 참고할 만한 글이 섞여 있는데, 완벽한 책이란 없다. 초보상태의 우리 생태문학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런대로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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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미래를 위하여
김인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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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의 어떤 글은 화강석같이 딱딱하면서 투박하고, 또 어떤 글은 문학이 주는 감동의 미세한 결들을 미려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앞의 경우는 주로 문학예술론 일반을 논할 때 그러하고 뒤의 경우는 시인론이나 작품론을 다룰 때 두드러진다. 그런데 내가 김인환의 글에서, 그가 다루는 작가보다 그의 문장에 더 끌리는 것은, 앞의 경우에서 보여주는 투박함이 어떤 진지함과 엄격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투박한 상상력과 논리는 이미 <상상력과 원근법>을 쓸 때부터 그야말로 투박하게 개진되었는데, 나는 그의 투박한 문법이 문학의 '문학다움'에 대한 소박한 저항과 반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사유의 기저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정신분석학과 불교가 있는데, 그는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심리학과 문학을 섞어놓으며 그 중심부에 작품 하나를 얹어놓는다. 시에 대해서라면, 그는 작품의 작품성을 결정하는 구조적 논리로서의 체계를 운율과 비유라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에도 그는 작품을 잘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운율과 비유의 체계를 드러내려면 작품을 쪼개고 배열해야 하는데, 잘 쪼개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가 잘 쓰는 방법은 작품에다 운율과 비유를 들이대지 않고 운율과 비유의 체계와 작품의 체계를 유비시키는 것이다. 작품의 체계는 그에게 항상 직관의 영역에 남아있는데, 그는 작품과 운율/비유를 각각 유비시킬 뿐 운율/비유의 체계를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은 언제나 쪼개지지 않고 건재할 수 있다. 가끔, 작품이 그의 담론 주위에서 개밥의 도토리처럼 굴러다니는 장면 역시 그런 이유에서 가능하다.

앞서 김인환의 문장의 특징을 투박함이라고 전제했는데, 그 투박함과 엄격함이 대부분의 경우, 고전주의적인 절제와,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하고 가벼운 문장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의 글만이 지닌 독특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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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주제로 만나는 동서비교철학
진위평 편저, 고재욱 김철운 유성선 옮김 / 예문서원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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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관, 과학사상, 논리사상, 종교관 등 7개의 주제로 동양적(엄밀히 말하면 중국적) 사유와 서구적(엄밀히 말하면 그리스 이래의 서구 주류 철학전통) 사유 형태를 요목조목 비교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 대륙에서 나온 대부분의 철학서가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중국 전통사상의 저류를 유기론으로 잡고 서양의 기계론적 사유와 대비시킨다. 필연적으로 중국 고대, 중세사상에 있어서 왕부지, 방이지 등의 기일원론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자생적 유물론으로 추켜세워진다. 주희, 주돈이 등도 가끔 언급되나 역시 기일원론의 관점에서만 인용되고 있다.

모든 학문에서 그렇듯이 대립적 사유는 일장일단이 있다. 우리는 대립적 사유 자체를 문제삼기 보다 각기의 경우에 있어서 대립적 사유의 효과와 정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이 저술 같은 경우는 지나친 이원론으로 인해 동양=유물론, 서양=관념론, 동양=변증법, 서양=기계론 등으로 질서있게 구획된다. 이러한 접근은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직성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유물론, 기계론, 유기론, 목적론 등이 가진 역사성은 항상 뒤에 쳐지기 마련이다. 학문에 있어서, 특히 철학 같은 분야의 비교론적 방법은 매우 어렵다. 이항 대립과 같은 손쉬운 길을 걷다가는 자칫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에 같혀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동양'이라는 말로 우리를 포함하는 문화적 지대를 통칭할 경우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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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철학 - 사상과 그 원천 들뢰즈의 창 3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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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노마디즘'과 함께, 들뢰즈 철학을 정면으로 사유하는 가장 최근의 저술이다.
비전공자에게는 그다지 친절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들뢰즈철학에 대해 나름의 '진지함'을 견지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퍽 의미 있을 만한 텍스트.

니체, 스피노자, 프로이트, 라캉 등 들뢰즈를 거쳐간 혹은 들뢰즈가 딛고 일어선 사상가들과의 사유의 접점들을 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찬찬히 살펴주고 있다. 특히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들뢰즈 존재론의 궁극과 맞닿아 있다는 결론 부분, 니체의 영원회귀와 라캉의 부분충동을 들뢰즈의 욕망 개념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 등 들뢰즈 철학의 세밀한 부분에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들뢰즈 사상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자연스럽게 그것이 서구 주류 형이상학 즉 목적론과 변증법, 그리고 유기론에 대한 근원적 비판으로서의 들뢰즈철학의 밑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는 것. 또 이 과정에서 들뢰즈의 주요 개념들 이를테면, (신학적, 혹은 결여에서 비롯한 오이디푸스적 욕망이 아니라 생산으로서의 기계적)욕망, (목적론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기계, (양태들이 기호 해독을 통해 도달하는 결합으로서의) 배치, 차이 (자체) 등의 개념들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최근 문학저널에서 논의되었던 근본적이거나 지엽적인 쟁점이 진지한 여과 없이 다시 논의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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