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미래를 위하여
김인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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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의 어떤 글은 화강석같이 딱딱하면서 투박하고, 또 어떤 글은 문학이 주는 감동의 미세한 결들을 미려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앞의 경우는 주로 문학예술론 일반을 논할 때 그러하고 뒤의 경우는 시인론이나 작품론을 다룰 때 두드러진다. 그런데 내가 김인환의 글에서, 그가 다루는 작가보다 그의 문장에 더 끌리는 것은, 앞의 경우에서 보여주는 투박함이 어떤 진지함과 엄격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투박한 상상력과 논리는 이미 <상상력과 원근법>을 쓸 때부터 그야말로 투박하게 개진되었는데, 나는 그의 투박한 문법이 문학의 '문학다움'에 대한 소박한 저항과 반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사유의 기저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정신분석학과 불교가 있는데, 그는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심리학과 문학을 섞어놓으며 그 중심부에 작품 하나를 얹어놓는다. 시에 대해서라면, 그는 작품의 작품성을 결정하는 구조적 논리로서의 체계를 운율과 비유라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에도 그는 작품을 잘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운율과 비유의 체계를 드러내려면 작품을 쪼개고 배열해야 하는데, 잘 쪼개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가 잘 쓰는 방법은 작품에다 운율과 비유를 들이대지 않고 운율과 비유의 체계와 작품의 체계를 유비시키는 것이다. 작품의 체계는 그에게 항상 직관의 영역에 남아있는데, 그는 작품과 운율/비유를 각각 유비시킬 뿐 운율/비유의 체계를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은 언제나 쪼개지지 않고 건재할 수 있다. 가끔, 작품이 그의 담론 주위에서 개밥의 도토리처럼 굴러다니는 장면 역시 그런 이유에서 가능하다.

앞서 김인환의 문장의 특징을 투박함이라고 전제했는데, 그 투박함과 엄격함이 대부분의 경우, 고전주의적인 절제와,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하고 가벼운 문장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의 글만이 지닌 독특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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