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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나혁진 지음 / 북퀘스트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 애호가이자 장르소설 편집자 출신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 입장에서 반대로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작가가 된 심정은 어떨까. 인천 태생의 작가는 야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야구로 치자면 프로야구 선발 투수 데뷔전이다. 긴장감을 극복치 못하고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초반 강판 당할 것인지 아니면 대형 신인의 출현을 알리듯 완봉, 완투의 신들린 역투를 펼칠 것인지...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책을 집어든다.
『브라더』는 거대 기업의 조직 폭력배 중간 보스들의 치열한 자리 다툼과 더불어 공생하는 밤의 여인들의 처절한 생존 본능을 그린 작품이다. 2인자끼리의 치열한 암투, 미인계를 통한 라이벌 제거, 그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저울질하는 밤의 여인들등 음모와 모략, 배신과 복수가 판을 치는 밤의 세계를 하드보일드 터치의 담백한 문체로 속도감있게 그려낸다. 한국판 '불야성' 또는 '조폭 느와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성민, 여진, 완기, 미옥 네 명의 등장인물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마지막 성민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구성은 단점이 있다. 바로 호흡과 긴장감이 끊어진다는 점이다. 장르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긴장감의 유지다. 책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긴장감이 조금씩 상승하다가 막판에 팡! 터지는 것이 좋은 엔터테인먼트 소설 아닐까. 한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되다가 새로운 주인공의 얘기로 넘어가면서 상승했던 긴장감이 급사라진다. 그리고 새출발. 주인공이 바뀔때마다 롤러코스터처럼 긴장감이 오르락내리락 요동친다.
제일 재밌게 읽은 파트는 1장 성민편이다. 하나의 에피소드에 완벽한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성민이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장면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하지만 이어진 여진과 완기 그리고 미옥의 장에서는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지만 성민편같이 손에 땀을 쥐는 스릴감이 없다.
여진편은 성민의 복수에 대한 수단으로써 미옥을 이용하게 되는 기다란 과정, 완기편은 최사장을 배신하게 되는 경위를 길게 나열할 뿐이다. 마지막 장, 공장에서 벌어지는 라스트씬은 결말이 깔끔하면서도 다소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극의 마무리를 위해 주요 등장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을 심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완기가 그순간 현장에 나타난 점도 의문이다. 단순히 스릴러적 감성으로 봤을 때 1장 성민편이 제일 재밌었고 (최고다!) 그 다음이 5장 라스트씬, 2,3,4장은 평범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2장 여진편에서 고급바를 다니면서 명품을 사느라 빚을 지고 그러다 사채에 손을 댄다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누구나 아는 흔하디흔한 레파토리라 신선미가 떨어진다. 거기에 펵치기 미옥이 여진과 처음 맞딱뜨린 순간 일말의 저항이나 반격없이 순한 양마냥 고분고분 복종한다는 설정도 부자연스럽다. 2장의 핵심 줄거리인 여진이 미옥을 자기편으로 포섭하는 과정이 4장 미옥편에서 반복돼서 나오는데 (338~345쪽) 화자만 다를 뿐 딱히 새로운 내용도 없는지라 불필요해 보인다.
제일 안읽힌 페이지가 4장 미옥편의 초반부이다. 이쯤이면 이미 작품의 2/3 지점이다. 야구로 말하면 7회 정도. 슬슬 라스트씬을 위해 피치를 가해야할 때. 이미 성민, 여진, 완기편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일이 궁금해서 긴장감과 호기심이 동반 상승하는 중에 미옥편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고아원, 은행 근무등 자라온 과거사를 들어야 한다. 나는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이러한 구성이 맘에 안든다. 달리 말해서, 네 사람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묶여있는 이상 각자의 얘기를 따로 서술하지 않고 한데 묶어서 일반적인 스타일로 전개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집어들자마자 한순간에 다 읽었을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다. 두뇌플레이가 뛰어난 성민과 주먹의 일인자인 완기가 보여주는 중간 보스들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여진과 미옥편에서는 화류계 여성으로서 느끼고 행동해야하는 심리와 삶의 처세술이 공감가게 그려진다. 건달들의 조직 세계와 텐프로로 대표되는 밤 문화의 묘사도 생생하고 특히 불법 격투 도박씬은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훌륭한 작가가 되시라는 애정을 듬뿍 담아 다소 까칠하게 리뷰를 썼다. 나름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삼행시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