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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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가 미국까지 확산되자  일부 돈많은 부자들이 아수라장인 지상을 피해 미국 메인주의 허허벌판 지하에 건설된 호화 대피시설 일명 "성소"에 긴급 입주한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폐쇄된 지하 공간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설상가상으로 외부와의 통신이 두절되며 지상의 출구마저 봉쇄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는 고립된 지하 공간에서 탈출구가 없는 그들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그야말로 스릴러적 오감을 왕창 자극하는 매력적인 소재의 클로즈드서클 미스터리이다. 완벽한 시설이라던 홍보와는 달리 예산과 기술력 부족으로 시설은 허술하고, 거액을 지불한 입주자들은 분노와 허탈한 심정으로 생면부지의 타인과 공동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하지만 성소의 운영을 총괄하는 관리인의 석연치않은 죽음을 시작으로 통신 두절, 지상문 봉쇄, 음식과 물의 고갈등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고 급기야 입주민 사이에서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안전해야할 지하 성소는 오히려 지상보다 못한 공포와 암흑의 세계로 변질된다.

  

이 작품은 단순히 폐쇄된 공간에서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게 아니라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 그로인해 살인으로 치닫는 타인과의 갈등 구조에 촛점을 맞춘다. 다섯 가족을 대표한 다섯 명의 화자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끌고가는데 아무래도 여성 작가 특유의 (남,녀 두 작가의 공동 집필인데 글은 주로 여성 작가가 쓴 듯) 섬세함을 곁들인 가족 중심의 일상적인 얘기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라 일견 지루한 부분도 존재한다.  

 

어쨌든, ​식량은 줄어들고 탈출구까지 막힌 고립된 지하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과 거기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스릴감있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밝혀지는 연쇄살인범의 정체 역시 의외에 인물인데 그 동기가 나름 공감이 간다. 내가 저런 고립된 지하 시설에서 극한 상황에 처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니 그저 지상에서 편안히 숨쉬는게 고마울 뿐이다. 역시 제일 무서운 것은 지상을 오염시키는 바이러스같은 질병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철저한 개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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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앙 헬러
앙리 코뱅 지음, 성귀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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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의『셜록 홈즈』는『막시밀리앙 헬러』를 표절했다?"라는 띠지의 도발적인(?) 문구가 눈에 띠는 프랑스 작가 앙리 코뱅의 데뷔작이자 첫 추리소설이다. 이 책의 출간년도는 1871년,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인기있는 탐정인 셜록 홈즈가 탄생하기 16년전이다.

근데 앙리 코뱅이 창조한 탐정 막시밀리앙 헬러의 캐릭터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의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큰 키에 마른 체형, 집에만 쳐박혀있는 은둔형 천재, 두뇌 회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간 혐오와 세상 기피의 염세주의자, 의학과 화학에 정통하고 아편을 피우는...그리고 그들의 활약상은 공교롭게도 모두 의사인 친구에 의해 기록된다.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나. 나 역시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보통 책 말미에 수록되는 역자의 <작품 해설>이 이 책에는 서두에 수록되어 있다. 역자는 작품을 읽기에 앞서 막시밀리앙 헬러와 셜록 홈즈의 유사성에 관한 추리문학사적 배경과 당시 시대 상황,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여러 참고 문헌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역자의 서두 소개글을 읽어보니 나 역시도 궁금증이 증폭된다. 과연 코난 도일은『막시밀리앙 헬러』를 읽고 영감을 받아 (또는 표절, 차용 수준으로) 셜록 홈즈라는 불세출의 탐정을 창조했을까 아니면, 단순한 동시대의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을까.

은퇴한 재력가가 비소로 독살되고 며칠전 고용된 하인이 유력 용의자로 경찰의 혐의를 받자 막시밀리앙 헬러는 하인의 무죄를 입증하고 진범을 밝히고자 사건에 뛰어든다. 1,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현장 조사를 통한 논리적인 분석과 추리로 범인을 가려내는 추리소설인 반면 2부는 범인의 아지트에 침투해서 증거 확보와 체포를 하는 모험(활극)소설이다. 

일단 책을 잡은 뒤 이틀만에 다 읽었을 정도로 분량도 많지 않고 가독성도 좋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뛰어난 완성도와 재미를 자랑한다고 보기 어렵다. 셜록 홈즈를 빼닮은 듯한 주인공 탐정이 등장해서 빼어난 변장술과 대범한 행동, 예리한 추리로 범인의 실체에 접근하는 1부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모험담이 일기 형식으로 펼쳐지는 2부는 조금 단조롭고 지루하다. 무도회 장면과 성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무관한 부분들을 과감히 걷어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고 2부에서 주인공과 범인 사이에 손에 땀을 쥐는 지략 대결이나 사투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2년간 집밖으로 두문불출하던 인간 혐오자이자 염세주의자인 주인공이 단지 한 사람의 누명을 벗기기위해 그 골골대는 허약한 몸으로 파리를 떠나 몇날며칠 외지에서 그러한 파란만장한 목숨 건 모험을 펼친다거나 천재적인 계략과 대범한 변장술로 신출귀몰하며 법망을 교묘히 피해다니는 교활한 악당이 그렇게 쉽게 탐정의 접근을 허락해 범인 주변을 마구 돌아다니게 하는 점도 쉬이 납득이 안된다.​ 

어쨌든 확실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이 책 한 권으로 단정지을순 없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지리적 위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여러 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도일이 홈즈를 창조할 때 막시밀리앙 헬러라는 탐정 캐릭터를 어느 정도는 참고한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두 탐정간에 유사한 점은 물론이고 우리가 홈즈의 주옥같은 장,단편에서 익히 봐온 암호 풀이, 변장술, 모험담등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방식 역시 닮은 점이 많다. 책의 재미 여부를 떠나 우리가 아는 위대한 탐정 셜록 홈즈의 원조격인(?) 캐릭터가 그 이전에 존재했었단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추리소설사적 가치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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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재도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5
모리 히로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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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미스터리의 전설" 모리 히로시의 S & M 시리즈 제5탄이다. 그간 전작들이 이공계 추리소설답게 연구소, 실험실, 변형 건축물 (삼성관)등이 주요 배경이었는데 이번 작품에는 그러한 공학적 시설에서 탈피, 한 가문의 가보에 얽힌 비밀과 그에 연루된 당주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다.

가야마 家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신비의 가보가 두 개 있다. "천지의 표"라는 호리병안에는 주둥이 입구보다 큰 열쇠가 들어 있고, "무아의 궤"라는 상자는 오직 호리병속 열쇠로만 열 수 있다. 거기에 1대에 이어 2대 당주까지 작업실 창고에서 사망하는 의문의 사건이 되풀이된다. 제목『봉인재도』는 "봉인된 것이 다시 반복된다"는 뜻이다.​

일단 추리소설로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요소가 풍부하다. 호리병속의 열쇠는 어떻게 꺼낼 것이며 그 열쇠로 상자를 열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리고 2대에 걸친 당주의 비극적인 죽음의 진상은 무엇인가.​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가보의 비밀과 당주의 죽음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적 전개와 사이카와와 모에의 러브 라인이 병행해서 진행되는데 이게 어찌보면 양날의 검이다. 조금씩 발전하는 커플의 알콩달콩한 러브 스토리를 흥미롭게 지켜보다보면 사건의 본질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단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는 시종일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선에서 두 이야기를 잘 조율해 끌고나간다.

당주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과 호리병과 상자의 비밀이 풀리는 결말 부분은 정말 초집중해서 읽었다. 두 가보에 얽힌 가야마 가의 어두운 내력이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가운데 밀실이 생성된 경위에 대한 이공계적 분석도 좋았고 밝혀지는 호리병과 상자의 정체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이다. 과연 그러한 호리병과 상자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에 앞서 그 메카니즘이 그저 신기하고 놀랍다. 작가는 어디서 이런 기발한 구상 또는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당주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와 두 가보가 전해주는 신비한 매력, 공학적 해결 기반위에 흐르는 동양적 사상과 철학등 작품의 소재와 배경, 사건이 가져다주는 호기심과 풀이과정면에서 최근에 읽은『웃지 않는 수학자』,『시적사적 잭』보다 조금 더 재밌게 읽었다. 그런 연장선상으로 책장에서 대기중인 제6권『환혹의 죽음과 용도』도 기대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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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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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루프"라는 SF적 설정을 본격 미스터리에 멋지게 대입시킨『일곱 번 죽은 남자』와 "모든 해체에는 이유가 있다"면서 다양한 토막 살인의 동기와 수법을 입체적으로 분석한『치아키의 해체 원인』에 이어 북로드에서 펴낸 "SF 신본격 미스터리의 귀재" 니시자와 야스히코 제3탄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인격이 타인의 육체로 전이되고 그 와중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S시 한 쇼핑몰의 스낵바에 있던 점원과 손님 여섯 명은 지진으로 인해 쉘터로 긴급 대피하지만 그 쉘터는 다름아닌 인격 전이 현상이 발생하는 "챔버"라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다. 순식간에 순차적으로 자신의 인격이 타인의 육체에 깃든 여섯 명은 CIA에 의해 특수 시설에 격리되고...그렇게 계속해서 인격 전이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과연 누구의 인격이 연쇄살인을 일으킨 것인가.

타인의 육체에 인격이 전이된 상태로 특수 시설에 고립되는 여섯 명이 처음 스낵바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벌이는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는 부산스런 모습은 마치 한스미디어에서 펴낸 작가의 "닷쿠 & 다카치" 시리즈를 보는 듯 하고, 위치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미지의 시설이라는 관점에서는『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학교가 생각나기도 한다. 어쨌든 향후 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의 근간이 되는 모든 실마리와 복선이 이 부분에 숨어 있다.

단시간에 인격이 여러번 연속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과 연계된 부분은 사실 따라가기가 조금 벅차다. 원체 짧은 시간에 인격이 타인의 몸으로 슬라이드 형식으로 계속해서 전이되기에 누구의 몸에 누구의 인격이 들어있는지 헷갈린다. 조금만 방심하다간 흐름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살인사건의 종합적인 정황 및 개요가 뚜렷이 머릿속에 각인되지 않고 그런 여파로 주인공이 사건을 되짚어 추리하는 부분도 조금은 흐릿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결말에서의 예기치못한 반전과 깔끔한 마무리는 무척 인상적이다. 사건의 발생과 추리과정에서 오는 다소 안개낀 듯한 모호하고 석연치않은 답답함을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시원스럽고 명쾌한 결말이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데 그치지 않고 주인공을 포함 살아남은 자들이 어려운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엔딩 장면은 흐뭇하기까지하다. 데뷔작인『치아키의 해체 원인』을 통해 비상한 두뇌와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로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 역시 SF요소를 본격 미스터리에 결합시키는 작가의 주특기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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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않는 수학자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3
모리 히로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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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미디어에서 펴낸 "이공계 추리소설의 전설" 모리 히로시의 S & M 시리즈 제3탄이다. 이번 작품에는 은둔형 천재 노수학자와 오리온 별자리를 본떠 만든 세 개의 원형 돔으로 이루어진 삼성관(三星館)이라는 변형 건축물이 등장한다. 

삼성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 초대받은 사이카와와 모에는 노수학자 덴노지 쇼조가 그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12년전과 마찬가지로 뜰에 있는 거대한 청동 오리온 동상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 과연 천재 수학자가 선보이는 궁극의 트릭과 삼성관을 피로 물들이는 연쇄살인의 범인은 누구인가.

공학, 수학, 천문학 거기에 철학까지 어우러진 묘한 이공계 미스터리이다. 삼라만상을 축소해놓은 듯한 삼성관의 철학적 컨셉과 기묘한 구조도 흥미로웠고 그곳의 주인이자 지하실에 수년간 칩거하는 노수학자의 존재 역시 시선을 잡아끈다. 중앙홀인 플라네타륨에서 펼쳐지는 휘황찬란한 우주 별자리쇼를 활자로만 느껴야한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살인사건과 모에의 구애에 무관심한듯 하며 늘상 커피와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사이카와 조교수의 시크함은 여전하고 그러한 사이카와를 사모하는 여대생 모에의 연정은 애틋하기까지 하다. 사이카와가 눈만 뜨면 담배를 입에 무는지라 트릭과 범인의 정체보다 과연 담배를 작중 모두 몇 대를 피웠는지가 더 궁금하다. 오죽하면 한 번 세어볼까 생각도 했다 ㅋㅋ

청동 오리온 동상을 사라지게 한 트릭, 거기에 연계한 범인의 범행 수법도 나름 기발하고 만족스럽다. 하지만 동기 부분은 여전히 납득이 어렵다. 바로 전에 읽은『시적 사적 잭』때도 그랬지만 이 작가는 공학적 트릭에만 신경쓰는건지 동기 부분은 별 공을 들이지 않는 모양새다. 오죽하면 사이카와가 범인의 정체만 밝힐 뿐 동기 부분은 경찰에 떠넘길까.

또 하나 불만인 점은 작가가 독자가 쉽게 트릭과 동기 그리고 범인을 맞히지 못하게끔 초반부에 등장인물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작가만 믿고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머리 쥐나게 추리하며 따라가다보면 후반부에 "사실은 이렇다"라며 전혀 다른 얘기들이 나온다. 나름 범인은 누굴까, 동기는 뭘까하며 추리해온 독자 입장에서는 헛물만 켜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우주의 축소판을 보는듯한 삼성관의 신비한 매력, 그곳에서 펼쳐지는 우주 별자리쇼, 천재 수학자가 제공하는 가공할 트릭과 연쇄살인사건을 논리정연하게 해결하는 우리의 사이카와-모에 콤비. 조만간 출간할 S & M 시리즈 5,6권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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