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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앙 헬러
앙리 코뱅 지음, 성귀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코난 도일의『셜록 홈즈』는『막시밀리앙 헬러』를 표절했다?"라는 띠지의 도발적인(?) 문구가 눈에 띠는 프랑스 작가 앙리 코뱅의 데뷔작이자 첫 추리소설이다. 이 책의 출간년도는 1871년,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인기있는 탐정인 셜록 홈즈가 탄생하기 16년전이다.
근데 앙리 코뱅이 창조한 탐정 막시밀리앙 헬러의 캐릭터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의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큰 키에 마른 체형, 집에만 쳐박혀있는 은둔형 천재, 두뇌 회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간 혐오와 세상 기피의 염세주의자, 의학과 화학에 정통하고 아편을 피우는...그리고 그들의 활약상은 공교롭게도 모두 의사인 친구에 의해 기록된다.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나. 나 역시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보통 책 말미에 수록되는 역자의 <작품 해설>이 이 책에는 서두에 수록되어 있다. 역자는 작품을 읽기에 앞서 막시밀리앙 헬러와 셜록 홈즈의 유사성에 관한 추리문학사적 배경과 당시 시대 상황,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여러 참고 문헌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역자의 서두 소개글을 읽어보니 나 역시도 궁금증이 증폭된다. 과연 코난 도일은『막시밀리앙 헬러』를 읽고 영감을 받아 (또는 표절, 차용 수준으로) 셜록 홈즈라는 불세출의 탐정을 창조했을까 아니면, 단순한 동시대의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을까.
은퇴한 재력가가 비소로 독살되고 며칠전 고용된 하인이 유력 용의자로 경찰의 혐의를 받자 막시밀리앙 헬러는 하인의 무죄를 입증하고 진범을 밝히고자 사건에 뛰어든다. 1,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현장 조사를 통한 논리적인 분석과 추리로 범인을 가려내는 추리소설인 반면 2부는 범인의 아지트에 침투해서 증거 확보와 체포를 하는 모험(활극)소설이다.
일단 책을 잡은 뒤 이틀만에 다 읽었을 정도로 분량도 많지 않고 가독성도 좋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뛰어난 완성도와 재미를 자랑한다고 보기 어렵다. 셜록 홈즈를 빼닮은 듯한 주인공 탐정이 등장해서 빼어난 변장술과 대범한 행동, 예리한 추리로 범인의 실체에 접근하는 1부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모험담이 일기 형식으로 펼쳐지는 2부는 조금 단조롭고 지루하다. 무도회 장면과 성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무관한 부분들을 과감히 걷어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고 2부에서 주인공과 범인 사이에 손에 땀을 쥐는 지략 대결이나 사투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2년간 집밖으로 두문불출하던 인간 혐오자이자 염세주의자인 주인공이 단지 한 사람의 누명을 벗기기위해 그 골골대는 허약한 몸으로 파리를 떠나 몇날며칠 외지에서 그러한 파란만장한 목숨 건 모험을 펼친다거나 천재적인 계략과 대범한 변장술로 신출귀몰하며 법망을 교묘히 피해다니는 교활한 악당이 그렇게 쉽게 탐정의 접근을 허락해 범인 주변을 마구 돌아다니게 하는 점도 쉬이 납득이 안된다.
어쨌든 확실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이 책 한 권으로 단정지을순 없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지리적 위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여러 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도일이 홈즈를 창조할 때 막시밀리앙 헬러라는 탐정 캐릭터를 어느 정도는 참고한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두 탐정간에 유사한 점은 물론이고 우리가 홈즈의 주옥같은 장,단편에서 익히 봐온 암호 풀이, 변장술, 모험담등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방식 역시 닮은 점이 많다. 책의 재미 여부를 떠나 우리가 아는 위대한 탐정 셜록 홈즈의 원조격인(?) 캐릭터가 그 이전에 존재했었단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추리소설사적 가치는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