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콘크리트 ㅣ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이제는 쇠락한 인구 5만 명의 도농복합도시인 안덕. 산업의 잔해가 보이고 한 쪽 면은 바닷가로 이어진 조그마한 도시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세휘는 이혼으로 서울 검사 생활을 청산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고향 안덕으로 내려온다.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은 치매를 앓는 칠순 노모와 안덕의 유지이자 검은 실세인 당숙 장정호 회장이다.
당숙의 부탁으로 마트 사장의 임금 체불 소송건을 준비하는 와중에 마트는 불타고 사장은 실종된다. 불탄 현장에 남겨진 절단된 손가락 하나. 연쇄 실종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당숙은 노모의 치료비와 아들 보호, 변호사로서의 고향 정착과 정계 진출 등 여러 편의를 약속하며 세휘에게 경찰 몰래 이 사건을 수사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당숙의 최측근 지인들이 연속으로 실종되고 불탄 현장에는 어김없이 잘린 손가락이 등장한다. 과연 누구의 범행인가?
이 책은 단순히 연쇄 실종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안덕이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기생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음모와 배신, 집착과 욕망에 포커스를 맞춘다. 정작 주인공 세휘부터 치매인 모친을 돌보고, 전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키며, 변호사로서의 성공과 정계 진출 등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기꺼이 현실과 타협한다. 비록 좌천된 신세이지만 서울 본사 복귀를 호시탐탐 노리는 안덕일보 한병주 기자나 진급에 목이 마른 최경식 형사 역시 모두 출세욕에 눈이 먼 세속적인 인간들이다. 물론 그 정점에는 정,재계 고위층과 결탁하여 성상납, 돈세탁 등 갖은 비리를 일삼아 온 장정호와 그 일당이 있다.
실종 방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지만 경찰은 시종일관 무능하다. 장정호 주변 인물들이 실종되면 그 공통점을 찾아 다음 희생자를 미리 보호할 수도 있고, 미수로 그친 골프 연습장 방화 사건 현장으로부터 범인의 발자국 등 다양한 증거를 확보하고도 용의자를 좁히지 못한다.
범인은 중반부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동기 역시 서서히 밝혀진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동굴씬이다. 바닷가 동굴 속의 숨겨진 비밀스러운 장소, 토착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은밀한 장소에 세휘가 발을 들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올라온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와 목숨 건 사투...가장 손에 땀을 쥐고 읽은 장면이다.
그렇게 세휘의 각고의 노력으로 범인이 검거되며 이야기가 종결되는가 싶더니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전혀 예상치못한 인물이 급부상해서 나를 놀래킨다. 사건의 배후에 그런 인물이 숨어있다니...그가 모든 것을 조종한 설계자라니...이런 전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당혹스럽다. 결말의 납득 여부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그나저나 그 여파로 인해 허수아비처럼 자아를 상실하며 몰락해 가는 세휘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콘크리트>는 문화 예술 방면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기교가 물씬 들어간 화려한 문장에 뛰어난 서사와 촘촘한 플롯...제법 필력이 좋고 내용도 무게감이 있다. 하지만 너무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미스터리의 색채가 산만하게 흩어지는 느낌이다. 인물과 사건을 축소해서 한 방향으로 집중해서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나저나 왜 제목이 <콘크리트>일까? 책을 펼쳤을 때부터 덮은 지금까지 궁금한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