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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평점 :
추리소설 매니아인 나로서는 "한국형 본격추리소설"을 완성해가는 도진기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물론 작가의 작품은 출간 즉시 모두 읽었지만『악마의 증명』만 여태 미독인지라 부랴부랴 찾아 읽었다.『악마의 증명』은 표제작을 포함, 여러 출판사를 통해 기발표된 일곱 편의 단편과 미발표작 한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읽어 보니 (당시) 현직 판사라는 법조인 경력을 십분 살린 법정추리물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SF, 오컬트, 호러, 환상 스타일의 작품도 보인다.
<악마의 증명>에서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쌍둥이 형제의 간교한 범죄를 입증하는 여검사의 재치가 돋보였고, <구석의 노인>에서는 보이는 것외의 또 다른 시각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타임 루프를 이용한 SF 단편인 <시간의 뫼비우스>는 무척 독특한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덧대여 흥미롭게 읽었지만 미스터리 요소가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는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의 괴기환상을 좋아한다지만 논리적인 사건 풀이로 흐르던 이야기가 갑자기 오컬트적 호러로 마무리돼서 당황했다. 동일한 기조를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정신 자살>의 쇼킹한 결말은 무척 마음에 든다 ㅎ). <외딴집에서>는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작가님의 이런 오컬트적 취향을 발견하고선 깜짝 놀랐다. 나름 신선했다. 수록된 여덟 개 단편중 BEST는 아무래도 작가에게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안겨준 <선택>을 꼽고 싶다. <한국추리소설걸작선2>에서 이미 접했던 작품이지만 다시 읽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리와 감동을 모두 잡은 수작이다. <정글의 꿈>과 <킬러퀸의 킬러>는 따로 언급 안하겠다.
평소 작가의 단행본들을 접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기발표된 단편들을 읽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초기작이 많아서인지 다소 어설픈 부분도 보이지만 작가님의 집필 성향이나 기조, 스타일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제는 본 궤도에 오르신 작가분이니만큼 훌륭한 "한국형 추리소설"로 계속 만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