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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평점 :
『속삭이는 자』,『이름없는 자』 ,『영혼의 심판』등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범죄학자이자 소설가인 도나토 카리시의 2015년 최신작이다. 타인의 잠재된 악의를 부추켜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천재적인 살인마가 등장하는『속삭이는 자』의 임팩트는 그야말로 강렬했다. 아마도 내가 읽은 스릴러물중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명품 스릴러일 듯. 과거에 실종된 사람들이 돌아와 연속해서 살인을 저지르는『이름없는 자』 역시 흥미진진하기는 마찬가지.
이 작가의 장점을 꼽으라면 범죄학자라는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심오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다년간 시나리오 작가로 단련된 유려한 필력에 있다. 거기에 스릴러 얼개를 유지하면서도 적재적소에 추리적 요소를 가미해서 장르소설로서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안개 속 소녀』는 여형사 밀라 바스케스가 등장하는 기존의 "~자 시리즈"와는 별개의 스탠드얼론인 작품이다. 광산 마을이자 열혈 종교 집단이 지배하는 폐쇄된 알프스의 산악 마을을 배경으로 열 여섯살 어린 소녀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스타 형사 포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첨에는 영화 시나리오로 집필했다가 소설로 급선회했다고 한다.
사실 책 초반부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실종된 소녀라는 흔한 소재가 딱히 매력적이지 않고 그러한 사소한(?) 사건에 매스컴 포함 온 나라가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밋밋하던 전개는 용의자가 한 명 드러나면서 급물살을 탄다. 그러면서 그 용의자가 어떻게 진범으로 취급받고 범죄자로 전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이면에는 증거를 조작하고 여론을 선동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는 포겔 형사가 있다.
작가는 증거가 불충분한 단순 용의자를 범인으로 낙인찍는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보다는 오직 범인의 정체에만 관심을 갖는 군중 심리와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매스컴의 횡포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마지막 장에서 예상치못한 놀라운 반전이 연속해서 터진다. 나름 재밌게는 읽었지만 기존의『속삭이는 자』,『이름없는 자』등에 비해 소재나 전개면에서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마디로, 강렬한 맛이 있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는데 제법 그럴듯한 반전 스릴러물이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