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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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9월 일제 강점기의 경성. 십년여 공사끝에 완공을 앞둔 조선총독부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갈갈이 찢긴 사체가 발견된다. 시체의 주인공은 건축과 소속의 조선인 이인도 기수. 그의 사체는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등 여섯 부분으로 토막이 나 흩뿌려져 있고 각 부위를 연결해 보니 일제가 사용을 금했던 대한제국의 큰 대(大)자를 상징한다. 일제 강점의 중심이자 표본인 조선총독부 신축 건물에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살인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경찰과 총독부의 보도관제속에 시대일보 사장이자 사주인 최남선의 부탁으로 셜록 홈즈 뺨치는 추리력을 가진 통속잡지 <별세계>의 기자 류경호가 사건에 뛰어든다.

『적패』등으로 알려진 정명섭 작가의 역사 추리물이다. 개인적으로 역사 미스터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지라 이 작가의 장편 역시 처음 접한다. 작가는 그동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물을 여럿 내놓았는데 알고보니 좀비물도 세 권 발표했다. TV 프로그램 <능력자들>에 좀비 덕후로 출현했을 정도이니 작가의 이력이 참으로 특이하다 ㅎㅎ​

한마디로 '한국판 셜록 홈즈' 류경호 기자가 맹활약하는 추리 모험극이다. 조선총독부 신축 공사장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의열단의 소행으로 몰아서 총독부의 관리직에서 조선인을 몰아내려는 일동회의 음모, 이에 맞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자국인을 보호하려는 의로운 주인공. '한국판 셜록 홈즈'는 ​피해자의 주변을 탐색하고, 의심가는 자를 미행하며, 거기서 얻은 단서들을 추리해서 조금씩 범인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과 천부적인 추리력,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등 때론 변장, 미행, 잠입을 서슴치않는 주인공의 행동이 마치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를 보는 듯 하다. 

<별건곤>이라는 실존 잡지를 통해 <별세계>를, 당대의 문필이자 친일파로 변절한 육당 최남선부터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박길룡 건축사, 근대 일본 언론계의 실세 도쿠토미 소호같은 실존 인물을 내세워 극중 사실감을 더하고...아무래도 정의로운 조연은 일본인 경찰 하야시 곤스케 경부 아닐까. 이 작자의 도움이 없었으면 류경호 기자의 수사도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마치 조선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치부되는 살인사건과 이를 이용해 조선을 문화통치로부터 탈피, 더욱 압박하려는 일동회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피살된 이인도 기수의 비밀 설계 노트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특히 조선총독부 지하의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결투는 흥미진진하고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전혀 예상밖이다.  

 

<별세계> 잡지 기자들의 르포르타주식의 탐방 및 체험 취재 현장을 통해 당시 조선인들의 다양한 삶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라를 잃은 약소국의 약자로 살아가야만 했던 선조들의 아픔, 지식인의 고뇌와 저항, 친일파도 아니요 독립운동가도 아닌 일반 서민의 비애와 고단한 삶 그리고 그런 조선을 영원한 속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음모와 계략등이 작가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철저한 고증을 기반으로 잘 투영되어 있다.

 

탄탄한 배경에 다채로운 이야기로 버무린 재미난 정탐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단순히 트릭과 반전의 오락적인 재미로 추리소설을 읽는 나에게 시대의 아픔과 독립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 계기도 되었고...특히 일제 강점의 표본인 조선총독부의 낙성식 일자와 민족의 울분와 애환을 달래주던 나운규 감독/주연의 영화 <아리랑> 개봉일이 같은 날이었다는 사실이 묘한 상념에 빠지게 한다. 너무나 매력적인 "한국판 셜록 홈즈 " 류경호 기자가 활약하는 <별세계 사건부> 2편도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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