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장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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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다가 보이고 뒤에는 숲이 우거진 산중턱에 그림같이 자리잡은 세이레이 종합병원. 비록 3년 역사의 신생 병원이지만 훌륭한 의료진, 최첨단 시설, 높은 장기이식 성공률에 병원 입지도 좋아 전국적인 평판이 좋다. 이제 막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세이레이 병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햇병아리 간호사 노리코는 매일 케이블카를 타고 출퇴근하며 의료인으로서의 부푼 꿈과 희망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날 산정상 레스토랑에서 수상한 한 커플의 "무뇌아 출산~"이라는 기묘한 대화를 우연히 엿들으면서 깊은 의구심에 빠져든다. ​

국내에『폐쇄병동』등으로 알려진 하하키기 호세이 작가의 의학 스릴러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데, 정신과 의사인 작가는 자신의 의학부 전공과 후생병원 진료부장의 경험을 살려 의학계를 배경으로 한 휴머니즘 넘치는 따스한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작가의 전공과 주특기가 잘 살아있다. 

무뇌아 출산이라는 의구심에 동료 간호사인 단짝 유코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특별병동이 존재한다며  그 의구심에 기름을 붓고 여기에 소아외과 이식 전문의 마토바 의사의 정의감이 가세하면서 특별병동에 숨겨진 무뇌아 출산이라는 진상을 파헤치려는 세 사람의 의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무뇌아가 존재한다. 무뇌아...뇌가 없이 태어난 아기...당근 무뇌아는 오래살 수 없고 바로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 무뇌아를 임신한 산부는 임신 중간에 수술로 생명을 지운다. 또는 태어난 아기는 장기 (내장의 여러 기관)를 적출해서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생명체에게 제공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무뇌아의 장기를 적출해서 필요로 하는 다른 아기에게 이식해 새 새명을 살리는 거야 사회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만약 의도적으로 무뇌아를 출산하게 하고 이 무뇌아의 장기를 여러 생명체에게 제공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이는 차원이 다른 반인륜적, 비도덕적 행위, 아니 범죄가 된다. 이 책『장기농장』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뇌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시라타니 부원장과 마토바 의사가 벌이는 설전은 사못 흥미롭다. 무뇌아는 뇌가 없어 생각을 못한다. 그러니 인간이 아니다. 즉, 태어나질 않았으니 죽음도 없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무뇌아의 장기를 적출해서 필요한 몸에 이식하면 여러 생명을 구할 수 있다...라는 부원장의 견해...자본주의 시장에서 충분히 납득가능한 논리이다. 반면에 마토바 의사는 비록 무뇌아라도 뇌만 없을 뿐 간, 쓸개, 허파, 심장이 있어서 호흡을 한다.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근데 어찌 함부로 생명을 다룰 수 있으냐...고 항변한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생명체를 다루려는 의료인으로서의 순수한 자세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의견 충돌. 관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로 봐야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마토바 의사 이어서 유코와 노리코 간호사가 연달아 특별병동으로 잠입하는 부분이다. 마치 내가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장소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듯 손에 땀이 나며 긴장감이 충만하다. 과연 특별병동에서 그들이 마주한 실체는 무엇일까...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그들에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한 의사의 연구욕과 출세욕을 바탕으로 의료인으로서의 양심과 윤리를 저버리고 오직 돈벌이에만 급급한 병원 고위층, 무뇌아 출산으로 거액의 반대 급부를 얻게 되는 급전이 필요한 임산부 그리고 그 임산부와 병원을 연결해 한 몫 단단히 챙기는 장기 매매 브로커...인간이면, 아니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인 행위들...비록 나 자신 또는 내 주변에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없어서인지 현실적 체감 온도가 떨어지지만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에 공분하며 다시 한번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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