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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서커스 ㅣ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6월
평점 :
2014년『야경』에 이어 2년 연속 "일본 미스터리 3관왕"을 차지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2015년 신작이라서 덥썩 구매했는데...결론부터 말해서 미스터리 3관왕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내가 너무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추리소설만 찾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왕과 서커스』라...난 사실 출판사 소개글을 보고 네팔에 체류중인 일본 프리랜서 기자가 왕실 일가 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 왕실 살해 사건"의 진범을 찾기위해 네팔 왕궁에 잠입, 파란만장한 모험과 현란한 추리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본격 추리소설인줄 알았는데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ㅎㅎ
이 작품은 네팔 왕실 살해 사건을 매개체로 해서 그 사건을 취재, 보도하는 제3세계 미디어의 직업 의식과 윤리관, 구체적으로 왕실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려는 한 일본 여성 프리랜서 기자가 겪는 주변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작가는 한 나라의 비극이 언론의 흥미거리식 보도로 인해 제3국 사람들에겐 그저 자극적인 소재의 오락거리로 전락함을 경고한다. 왕실 살해 사건을 서커스의 메인 이벤트에 빗대어 그것을 취재, 보도하는 기자는 서커스 단장이요, 기자의 글(기사)은 관객(제3국 사람들)에게 단지 자극적이고 흥미거리인 쇼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인 여기자는 취재도중 맞딱드린 한 남자의 죽음과 왕실 사건과의 연관성을 놓고 사실 관계와 보도 여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특종에 대한 갈망과 오보로 인한 기자로서의 책무와 사명감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리라.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오락적 재미가 뛰어난 편은 아니다.『인사이트 밀』에서의 폐쇄된 공간에서 심장을 조여오는 엔터테인먼트적 긴장감도 없고『부러진 용골』에서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마법과 추리를 넘나드는 화려한 서사도 없고『야경』에서의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촌철살인격의 날카로운 추리적 탐구도 없다.
사건의 세세한 정황과 함께 (사실 사건이라고 뭐 대단한게 있는게 아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드러나는 마지막 100여쪽만이 추리적 재미와 긴장감이 돋보일 뿐 앞의 350여쪽은 왕실 사건의 배후를 취재하려는 주인공 여기자의 르포 형식의 밋밋한 모험담에 지나지 않는다.『야경』으로 미스터리 3관왕을 차지한 작가가 뭔가 사회적 메세지를 전하는 심도있는 소재의 작품을 쓴 것은 좋으나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힐 뿐 "미스터리 3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깊은 울림이나 재미를 준 대단한 작품으로 보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