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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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스러운 데뷔작『13계단』과 2012년 미스터리 시장을 휩쓴 블럭버스터 대작『제노사이드』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2003년 작품이다. 시기적으로는『13계단』(2001년),『그레이브 디거』(2002년)와『유령 인명 구조대』(2004년) 사이에 나온 작품.  

 

다카노 가즈아키 작품의 특징은 철저히 미스터리적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 바닥에는 심오한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사형수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는『13계단』도 그랬고 신인류 출현에 대처하는 인간의 잔학성을 날카롭게 고찰한, 거창한 주제 의식의『제노사이드』도 마찬가지이다.

 

『K · N의 비극』역시 임신과 중절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배경에 담고 있다. 남편 슈헤이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성공과 고급 맨션으로의 이주등으로 나쓰키 부부에게는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 같지만 예정에 없던 아내 가나미의 임신과 중절을 결정하면서부터 부부 사이에 비극이 싹튼다. 아내 가나미의 내면에 중절을 거부하는 제2의 인격이 나타난 것이다.

 

책 제목의 K,N은 (책 뒤표지에도 있지만) 원치않는 중절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애처로운 두 명의 여성을 지칭한다. 여기에 또 다른 주인공인 이소가이 의사가 등장한다. 치료하던 환자의 극단적인 선택에 충격을 받고 휴직중인 전직 산부인과 의사이자 현직 정신과 의사인 이소가이는 환자 가나미를 돌보면서 의사로서의 올바른 선택과 치료에 대해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새집으로 이사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결혼 2년차 새내기 부부의 평화로운 책 초반 분위기는 예정에도 없던 임신과 중절 결정으로 인한 아내 가나미에게 제2의 인격이 나타나면서부터 급변한다. 중절을 거부하는 제2의 인격이 보여주는 섬뜩한 말투와 과격하고 공포스런 행동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 서스펜스물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 가나미의 몸에 빙의된 제2의 인격의 정체를 밝히고자 아내의 과거를 추적해가는 남편 슈헤이의 행적에서 미스터리 요소가 합류하고... 

 

이중의 인격을 보이는 아내 가나미, 그러한 아내의 행동에 따른 남편 슈헤이의 심경 변화와 의사로서 뱃속 아기의 운명과 산모의 건강에 대한 적절한 대응법으로 고뇌하는 이소가이를 지켜보는 재미에 중절이 가능한 제도적, 의학적 시기라는 시간제한적 요소를 첨부시켜 긴장감과 속도감을 높인다. 

 

중절 수술, 낙태같이 '인간의 생명은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사회 문제의 제시와 관련 통계 그리고 해리성 장애로 대표되는 다양한 정신 질환과 치료에 관한 생소한 의료 지식이 종종 등장하지만 등장인물도 제한적이고 분량도 두껍지않아 술술 읽힌다. 빠른 전개에 흡입력있는 스토리텔링은 나무랄데 없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구성에 완벽한 추리적 재미를 선사한『13계단』이나 묵직한 힘을 자랑하는 엄청난 스케일의『제노사이드』같은 함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작가의 네임 밸류에 걸맞는 무난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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