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경찰소설의 대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10년의 집필 기간을 걸쳐 2012년에 내놓은 작품으로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3년 일본 서점 대상 2위에 빛나는 작가의 역작이다. 이 책은 통칭 '64'라 불리는 미해결 소녀 유괴살인사건을 통해 경찰 조직의 생태, 그들만의 파워 게임, 비리와 조직적인 은폐로 점철된 보신과 안위 그리고 그것들을 파헤쳐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한 남자의 외롭고도 처절한 투쟁을 담고 있다.  

 

20여년간 전직 형사였던 주인공 미카미 요시노부는 D현경 경찰본부 경무부 비서과 조사관이자 '홍보담당관' 총경(경정)이다. 마음 한켠으로 늘상 복귀를 꿈꾸는 형사부의 옛동료, 상사들의 따가운 시선속에 직속상사인 캐리어 출신 경무부장의 허수아비 노릇, 경찰과 언론사이에서의 방패막이, 홍보담당관으로서 출입기자단과의 갈등, 게다가 가출한 여고생 딸아이의 생사여부와 그로 인해 피폐해진 부인까지 돌보는등 안팍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노인 차량사고의 가해자인 임신부의 신원 공개 여부로 출입기자단과 갈등을 겪는 와중에 갑작스런 경찰청장의 D현경 순시가 잡히고, 청장은 공소 시효를 1년 앞둔 D현경 최고의 난제인 '64' 사건 (쇼와 64년(1989년)에 발생한 일곱 살 여아 유괴살인사건으로 범인에게 돈을 뺏기고 미검거)의 해결 의지를 천명하고자 유가족을 방문하려 하지만 유가족은 거절하고...미카미는 유가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14년전 사건 당시 경찰의 조직적인 은폐 의혹을 접하는 한편 청장의 현경 순시를 둘러싸고 경무부와 형사부의 파워게임이 펼쳐지는데...고다 메모로 대표되는 14년전 사건 현장에서의 은폐의 진상과 경찰청장 순시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을 경무부로 좌천(?)시킨 동기이자 라이벌인 경무부 조사관의 수상쩍은 행보는 무얼 의미하는가.

 

이 책은 D현경 최대의 치욕이라 불리는 미해결 사건인 '64'사건을 통해 그 당시의 사건 관계자들, 아직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들, 64 사건을 기반으로 경찰 조직내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세력들등 사건에 관계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미카미를 기점으로 그가 속한 홍보실, 본청 직할로 캐리어의 관리를 받는 경무부, 현지 논캐리어 형사들의 최후의 보루인 형사부 그리고 D현경 출입기자단 이렇게 네 개의 축이 각자 그들 조직의 이해타산과 맞물려 숨가쁘게 돌아간다. 저자는 12년간의 신문기자 경험을 살려 경찰 조직원들 각 계파간의 암투와 자리보존, 보신과 안위등 경찰 조직의 생태, 경무부와 형사부가 벌이는 알력과 파워게임, 그 틈을 비집고 호시탐탐 먹잇감을 찾는 출입기자단등 각 조직에 속한 개개인의 심리와 역할, 갈등등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이케이도 준의『하늘을 나는 타이어』와 가이도 다케루의『제너럴 루주의 개선』이 떠오른다. 두 권 모두 탄탄한 구성에 드라마틱한 전개,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재밌고 감명깊게 읽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미스터리 범주에 넣기엔 다소 부족하다.『64』 역시 마찬가지다. 64 사건을 배경으로 조직 세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묵직하고 섬세하게 담은 작품이지 14년전 발생한 소녀유괴살인사건의 해결에 촛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스터리 요소가 풍부한 오락 소설을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또한 특정 조직의 내부 세계를 섬세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인지라 이러한 조직이나 소재에 관심이 없으면 그들이 펼치는 파워게임에 체감 및 공감이 어려워 자칫 지루한 독서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람 냄새나는 묵직한 이야기를 69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섬세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재주는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의 배경이 64 사건을 둘러싼 경찰 조직과 더불어 공생하는 출입기자단에 국한되지만 사실 우리네 사회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직에 속한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그 조직의 안위와 안녕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숙명을 가지며 개개인의 가치관 역시 그러한 조직의 실정과 자신이 처지에 부합해서 재정립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게 현실이다. 소설『64』는 오늘날의 조직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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