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스토리콜렉터 7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1년전 사둔 책을 이제야 펼쳐들었다. 많은 독자들이 중도 포기하고, 완주한 독자들도 이해도가 채 30%가 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악명(?)높은 책...『도구마 마구라』, 『허무에의 공물』과 함께 '일본 탐정소설 3대 기서'중 한 권으로 불리는 『흑사관 살인사건』. 1901년 출생한 저자가 1934년 <신청년>이란 잡지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러한 방대한 지식의 추리소설을 쓴 자체가 놀랍고 경이롭다.

1885년 보스포루스 해협 동쪽, 일본 가나가와 현에 설립된 이 화려한 서양식 저택은 마치 흑사병 사망자를 모아두었던 프로방스 요새를 떠올린다는 이유로 흑사관(黑死館)이라 불린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의 사생아로부터 시작된 저주받은 후리야기 혈통의 비극은 흑사관 설립자인 산테쓰 의학 박사의 자살 포함 세 건의 변사사건으로 이어진다. 흑사관에는 산테쓰 박사가 의문의 자살을 한 뒤로 그의 아들 하타타로와 네 명의 외국인 현악사중주단 악사들 그리고 여비서. 여사서, 노집사, 급사장등이 기거하고 있다.

흑사관의 성주 산테쓰 박사는 자살하기 전까지 40여년 동안 흑사관에 단 한순간도 거주하지 않았으며 정체불명의 네 명의 외국인 악사들은 그들이 요람에 있을 때 흑사관에 들어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바깥 출입을 한 적이 없다. 또한 흥미를 끄는 것은 '테레즈'라 불리는 여자 인형이다. 산테쓰 박사가 귀국선에서 병으로 잃은 사랑하는 여인 테레즈를 못잊어 만든 등신 크기(165cm)의 이 태엽 인형은 스스로 걸으며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섬뜩하게 작동하는 이 인형을 흑사관 사람들은 자살한 박사의 악령이 씌웠다고 두려워한다.

중세의 철학적인 벽화들과 다양하고 진귀한 고서 그리고 일본 무사의 갑옷등 기괴한 그림과 책, 장식물로 채워진 흑사관에서 박사의 자살 1년 뒤에 네 명의 외국인 악사중 한 명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명탐정 노리미즈는 하제쿠라 검사, 구마시로 수사국장과 함께 조사에 착수하지만 이를 비웃듯 연쇄적인 살인이 일어난다.

사실, 이 책의 리뷰를 쓴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왜냐면 (나 역시) 책의 30%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단편 『실락원 살인사건』에서 맛봤던 오구리 무시타로의 전방위적인 놀라운 지식과 현학적인 말투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고대나 중세 유명한 학자들의 이론과 학설을 기반으로 의학, 약학, 화학, 물리학, 연금술, 언어학, 기호학, 색채학, 심리학, 종교학, 정신병리학, 고고학, 천문학, 철학 등 온갖 학문의 생소한 지식들이 죄다 출동한다. 노리미즈 탐정이 쉴새없이 쏟아내는 현란한 현학적인 대사를 이해하기는 커녕 사건의 메인 흐름조차 따라가기가 벅차다. 과연 검증된 학문과 지식을 바탕으로한 작가의 확고한 세계관인지 단순한 언어유희적 말장난인지조차 헷갈린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노리미즈 탐정의 현학적인 대사를 읽다보면 정신이 멍해지고 육체가 이탈하는 느낌이다. 읽는 건 까만 글자지만 머리속은 새하안 백지가 된다. 특히 배음(음향), 천문학, 암호 해독 그리고 서양 고전 문학을 인용해서 대화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하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에 인용되거나 소개된 다양한 이론이나 학설의 진위와 노리미즈의 추리에 대한 상황적 논리성 또는 현실성 여부등을 판단할 엄두조차 생기지 않는다. 비꼬아 표현하자면, 추리소설을 빙자(?)한 작가의 끝없는 학식 자랑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마 적재적소에 들어있는 다양한 삽화와 도면들이 조금이나마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위안이다.

사건의 전개는 간단하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조사에 착수한 노리미즈의 현란하고도 현학적인 장광설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한 명씩 용의자와 대질 심문을 하고 그 와중에 의도적인 빗나간 추리로 용의자의 방심을 부르기도 하지만 노리미즈 스스로 잘못된 추리로 진범을 오인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흑사관 건축가의 저주에 물든 악마적인 계략, 성주 산테쓰 박사의 자살 포함 세 건의 변사사건의 진상, 박사의 유언장을 둘러싼 실체와 음모, 네 명의 외국인이 40년 동안 흑사관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비밀스런 배경등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줄을 잇는다. 몇 건의 살인 및 미수가 발생하는 동안 노리미즈의 추리는 번번히 빗나가고 용의자가 서서히 줄어드는 마지막 장에 가서 진범이 밝혀지지만 정확한 범행의 진상을 복기해주는 부분이 없어 책을 덮고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비록 디테일한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흑사관의 비밀스런 내력을 통한 책이 갖는 신비하고도 기괴한 분위기 그리고 노리미즈의 현학적인 대사들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쓴 작가, 번역을 한 번역가 그리고 (어찌됐건) 책을 끝까지 읽은 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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