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클락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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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자초한 자, 위기를 막으려는 자 그리고 위기에 닥친 자

세 남자의 숨막히는 두뇌 게임을 그린 고전 서스펜스 스릴러.

 

시인이자 소설가인 케네스 피어링의 1946년 작품으로 그가 발표한 여덟 편의 장편중 유일한 성공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1987년 제작된 케빈 코스트너, 진 핵크만, 손 영 주연의 <노웨이 아웃>의 원작 소설이고요. 그전에 1948년에 먼저 동명 제목으로 한 차례 영화화됐습니다. (원작을 읽어보니 <노웨이 아웃>은 스타 파워만 믿고 각색을 너무 심하게 한 3류(?) 오락 영화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얼 재노스가 이끄는 재노스 엔터프라이즈는 뉴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범죄, 스포츠, 요리등 거의 전방위적인 분야의 잡지를 출간하는 거대 출판 기업입니다. 책 제목인 '빅 클락(The Big Clock)'은 재노스 그룹 본사 로비에 걸려있는 대형 시계를 지칭하고요. '빅 클락'은 재노스 그룹을 대표하는 심볼이자 그룹 총수를 중심으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행동하는 조직의 일사불란한 체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룹 총수 얼 재노스는 우발적으로 애인 폴린 델로스를 살해합니다. 그리고는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그룹 브레인인 스티브 헤이건에게 달려갑니다. 헤이건은 월간지 <크라임웨이>의 편집 주간인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유일한 목격자인 의문의 남자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조지 스트라우드는 곤혹스러워합니다. 그가 바로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이니까요. 자신을 찾아내야 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숨겨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지 스트라우드. 시시각각 조여오는 운명의 톱니바퀴속에서 스트라우드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까요. 

 

일단 다중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구성이 무척이나 독특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앞 이야기를 받아 자신이 화자인 '나'가 되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갑니다. 그래서인지 그들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른 심리 상태 그리고 역할에 대한 행동 방식등이 리얼하게 묘사됩니다.

거대 출판 회사의 편집자 기획 회의를 통해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인 조직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조지 스트라우드의 평화로운 가정과 194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총수 애인과의 비밀스런 데이트를 곁들이며 낭만적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예기치못한 살인사건이 분위기를 급변시키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합니다. 

 

총수로부터 파트너, 편집 주간, 편집장 그리고 말단 기자에까지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남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가운데 자신을 숨기면서 자신을 찾으라는 아이러니한 지시를 하달하는 조지 스트라루드의 이중적인 두뇌플레이가 이야기의 뼈대를 구성합니다. 단서가 하나씩 발견될수록 경찰과 회사로부터 시시각각 정체에 대한 압박이 조여오고, 그 압박에 대응해 연막 작전을 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스트라우드가 자못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과연 나에게 이러한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마치 내 자신이 조지 스트라우드가 된 것처럼 그의 생각 하나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그렇게 숨 돌릴 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다소 차분하고 바른(?) 결말로 마무리되는게 인상적(?)입니다. 밤새워 손에 땀을 쥐며 읽은 저에게 순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뭔가 권선징악의 참 맛을 보여주는 화끈하고 통쾌한 멋진 드라마틱한 결말을 기대했던 장르 소설 독자에게 이 의외의(?) 차분한 마무리가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군요. (작품 해설에는 안티클라이맥스라고 되어 있네요.)   

 

1930년대의 대공황과 40년대 냉전의 시대를 관통한 미국의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한 개인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통해 암울한 시각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지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흡입력이 좋고요. 지금도 책 제목 '빅 클락'의 대형 시계가 운명의 시각을 째깍째깍하고 카운트다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드보일드 정서에 추리적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꽤 괜찮은 고전 서스펜스 스릴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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