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 일본에서 누마타붐을 일으켰던 바로 그 작품입니다. 하드보일드와 서스펜스 쟝르에 수여하는 오오야부 하루히코 대상 수상 등 많은 상을 받았네요. 2011년 출간작이니 56세에 늦깍이 데뷔한 1948년생 작가가 63세에 집필했다는 얘긴데...책을 읽어보니 이 할머니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닙니다. 환갑의 나이에 데뷔한 <얼음꽃>의 아마노 세츠코가 생각나는 건 당연하겠지요.  

 

조그만 애견센터를 운영하는 청년 료스케. 그는 요즘 공황상태에 빠져있습니다. 여자친구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고 아버지는 암선고를 받아 오래 못사시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두 달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료스케는 어느 날 아버지 집을 방문했다가 주인없는 방에서 '유리고코로'라  제목 붙여진 의문의 오래된 노트 네 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노트에 적혀있는 충격적인 얘기들...그것은 살인자의 살인 고백 수기였습니다. 과연 글쓴이는 누구인가, 가족중의 한 명인가, 이것은 현실인가, 단순한 창작에 불과한가...어릴적 의문스런 기억들과 맞물려 강한 호기심을 느낀 료스케는 이공계 대학에 다니는 남동생의 도움을 받아 노트에 얽힌 사연의 진위 파악에 나섭니다.

 

책을 읽은 느낌은 한마디로 재밌습니다. 독특한 소재와 흥미로운 전개에 시종일관 긴장감이 유지됩니다. 그래서인지 일단 한번 책을 잡으니 절대 놓을 수가 없더군요. 그만큼 독자를 빨아들이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합니다. 특히 주인공 료스케의 시선을 따라 읽는 살인자의 수기 부분은 이 책의 백미입니다. 소재와 쟝르, 충격적인 전개와 여성 작가란 면에서 자연히 미나토 가나에의 대표작 <고백>이 연상됩니다. <고백>에 비해 소재가 무겁고 수위가 높으며 재미와 완성도면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유리고코로가 없는 살인자가 유리고코로를 찾기위해 점진적으로 벌이는 일련의 살인 행각을 살인자 1인칭 시점의 수기 형식으로 세밀하게 잘 묘사했고 그러한 살인자로 인한 료스케의 가족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처해야했던 비밀스런 일들이 료스케가 네 살때 겪었던 희미하고 의문스러웠던 기억들과 맞물리며 드라마틱하게 전개됩니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숨겨왔던 진실과 충격적인 반전들...

 

긴박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수기 부분이 끝나면 상당히 긴 에필로그가 나오는데 그 마지막 부분이 마치 안개속을 유유히 걸어들어가는듯한 묘한 여운을 주면서 잔잔히 마무리되는게 인상적이네요. 올해 제가 읽은 얼마안되는 일미中에서 가장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데뷔작인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도 엄청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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