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제 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및 연작단편집 부문 수상작.

 

신타마가와선 산겐자야역 앞 상점가를 지나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골목의 끝 지점에 위치한 조그만 맥주바 [가나리야]. 이 곳의 주인장 구도 데쓰야는 손님의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알코올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맥주를 선택해서 권하며 거기에 맞는 안주를 신선한 재료로 요리해서는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손님에게 내온다. 그러면서 손님이 가지고 오는 일상의 고민거리와 수수께끼를 그저 조용히 들어주고 주제넘게 나서지 않으면서 차분히 사건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제목과 표지이다. 표제작이자 첫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란 서정적인 제목은 유명한 하이쿠 (일본 특유의 정형 단시) 시인의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한,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파스텔톤의 어여쁜 표지. 겉표지를 벗겨보면 그림 엽서같은 또 하나의 우아한 분홍색 속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표제작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포함 여섯 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연작 단편집이다. 모든 이야기는 조그만 맥주바 [가나리야]를 주무대로 단골 손님들이 번갈아 풀어놓는 일상의 수수께끼를 바의 주인장 구도가 해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쓸쓸하게 병사한 무명의 하이쿠 시인은 어째서 신분을 숨긴 채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지 못하고 말년에 고독한 최후를 맞이하였는가. 지하철 역사 무인대출 서가 책들에 들어있는 흑백 가족사진의 정체는? 사진전의 포스터는 왜 하루밤 사이에 모두 떼어져 사라진 것인가. 초등학생만 노린다는 빨간 손 악마의 정체는? 회전초밥집에서 유독 참치 초밥만 매일 일곱 접시를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명의 하이쿠 시인과 휠체어의 여성과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원한 맥주와 맛깔스런 요리 그리고 일상의 미스터리가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일상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단순한 얘기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심오하다. 그 속에 등장인물 개개인의 삶의 깊이와 무게가 들어 있다. 결코 단세포적인 마인드와 말초적 감성으로 쉽게 술술 읽는 책이 아니다. 짧은 단편마다 각자의 사연이 담긴 인생의 비애가 들어있고 삶의 관조가 묻어난다. 깊게 여운을 드리우는 작품이다. 

 

이 책은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및 연작단편집 부문 수상작"이다. 제 49회 이후 이 부문 수상작이 없다가 이 작품이 3년만에 수상작이 된 것 자체가 이 책의 진가를 잘 보여준 예라 하겠다. 이 책의 참 맛을 즐기려면 독자 역시 아직 팔팔한 청춘들보다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알코올 도수가 다른 네 가지 맥주의 맛을 어느 정도 알 정도의 나이는 돼야 하지 않을까...허구헌날 사람 잔인하게 죽어 나가고 기발한 트릭에 목매다는 책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내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게 하는,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 고품격의 잔잔한 미스터리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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