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심리 스릴러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ㅣ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금년 여름 구매한 <인어의 노래>를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영국 심리 스릴러의 대모 발 맥더미드의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vol.1 으로 1995년 작품이네요. 골드 대거상 수상작에다가 표지도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킬 정도로 멋지지만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여성 작가가 쓴 추리 소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스틸 라이프>에서 큰 재미를 못봤기 때문이죠. 저의 미스터리적 취향과 여성 작가의 작품은 왠지 궁합이 잘 안맞는다고나 할까요.

일단 여성 작가에게서 흔히(?) 보여지는 지나친 섬세함이나 곁가지 이런 건 안보이더군요. 오히려 잔인한 고문 장면 포함해서 이야기는 힘차고 진지하게 흘러갑니다. 프로파일러 토니 힐 박사와 캐롤 조던 경위를 메인으로 하는 수사팀의 3인칭 시점과 범인의 1인칭 시점으로 교차 서술되는 방식인데 책 초반부는 좋았습니다. 범인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가며 (마치 내 자신이 범죄자가 된 듯) 피해자를 관찰 - 납치 - 고문 - 살해 - 유기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캐롤 조던 경위 등 수사관의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범인의 내면을 조금씩 파고드는 토니 힐 박사의 프로파일링 기법도 나름 흥미진진했구요.

하지만 책 서두에 이미 네 건의 연쇄살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복기 차원에서 서술되는 범인의 일기는 피해자와 고문 방식만 조금씩 달라질 뿐 예측 가능한 동일 패턴의 반복인지라 그때부터 긴장감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사 상황에 따라 조금씩 범인의 형상에 구체화되는 토니 힐 박사의 범인 프로파일링을 따라가는 재미는 있었지만...40대 중반의 경험 많고 중후한 이미지일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30대 중반의 젊은 토니 힐 박사는 다소 우유부단하고 유약해 보이는 캐릭터로 나오더군요. 그래도 진범이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책장은 술술 넘어갑니다.

중간에 잘못된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디렉션이나 라스트에 조그만 액션씬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심리 스릴러물답게 차분하고 잔잔히 진행된 느낌입니다. 화끈한 액션씬이나 굴곡이 딱히 없어 조금 심심하다고 할까요. 그래도 이제는 흔한 소재가 된 프로파일링 기법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