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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ㅣ 스토리콜렉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모'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2001년 작품입니다.
간단한 줄거리를 보면, 부인과 딸을 둔 평범한 중년 회사원이 집 근처 주택분양 공사현장에서 피살체로 발견됩니다. 그 사흘전에는 노래방에서 한 여대생이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구요. 일련의 수사를 통해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밝혀낸 경찰은 피살된 회사원이 인터넷을 통해 가상의 '가족'을 구성, 아버지의 역할을 맡으면서 가족놀이라는 롤 플레잉 게임을 한 걸 밝혀내고 그 구성원을 찾아 수사에 착수합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두 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경찰소설의 형식을 띠지만 그 배경에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가족 구성원의 씁쓸한 현실이 내면에 깔려 있습니다. 멀쩡한 부인과 딸이 있는 가장이 밖에서 젊은 여성에게 오빠, 아빠 소리 들으면서 어울리고, 거기에 한 발 더 나가 인터넷으로 가상의 가족을 구성, 가족놀이까지 하며 실제 가족에게는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이 가족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부모 자식간에도 궁합이 있어, 인간적으로 서로 맞지 않으면 혈연도 저주스런 속박이 될 뿐이다 (p.163)"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을 뿐입니다.
R.P.G는 Role Playing Game의 약자로 피살자 회사원이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가족놀이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또 다른 뜻도 숨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역시 미미여사야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주요 무대가 경찰서 취조실 한 곳으로 국한되서인지 다소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그 곳에서의 용의자들과의 신문과 대화를 통해 범인을 좁혀나가는 추리적 재미도 쏠쏠합니다. 길지 않은 책 분량에 주요 등장인물도 제한적이라 몰입도 쉬워 단숨에 술술 읽히고요.
뒷부분으로 가면 반전이 숨어 있지만 추리소설 좀 읽으신 분이라면 쉽게 눈치채시리라 생각합니다. 살해 동기와 방법에서 약간의 의구심이 드는 걸 제외하고는 추리소설 형식을 빌어 현대 햇가족 사회의 어둡고 쓸쓸한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끔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모방범>같은 대작이야 아니지만 깔끔한 주말 특집 추리드라마 한 편 본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