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본격추리 단편집

살의의 형태
홍정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12월

네이버에 '엽기부족'이란 닉으로 활동하는 홍정기 작가의 본격 추리 단편집. 살의의 다양한 형태를 다룬 여섯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무구한 살의>는 범인의 정체와 트릭보다는 초등학생의 관점과 시선으로 마무리한 점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합리적 살의>는 아내를 독살하려는 남편의 범행 과정과 그 트릭을 밝혀내는 형사의 추리가 볼만하다. 세 번째 단편 <보이지 않는 살의>가 제법 재밌다. 밀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구성 요소와 진행 과정이 제법 기발하고 참신하다. 아마도 이 책의 베스트는 네 번째 단편 <백색 살의>가 아닐까. 여러 용의자 중 범인을 특정하는 마지막 장면이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 <영광의 살의>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이다.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가 부제로 어울릴 듯. <시기의 살의>는 진범의 정체에 관한 연속된 반전이 이 단편의 매력이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합격이다. 요즘 물리 트릭을 베이스로 한 본격 추리물에 꾸준히 매진하는 국내 작가가 홍정기 작가 외에 있을까? 한때 도진기 작가나 윤자영 작가가 그랬지만 요즘 뜸한 것 같아 아쉬움이 컸는데... 최근에 읽은 십각관을 오마주한 특수 설정의 <팔각관의 비밀>도 재밌게 읽었다. 수작 단편들을 여럿 선보였으니 슬슬 장편도 구상하지 않을까... 아무튼 요즘 물리 트릭의 본격 추리물에 매진하는 한국추리작가가 뜸한 만큼 홍정기 작가의 뚝심 있는 행보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