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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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집. 표제작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라는 150여 쪽의 중편 포함 열네 개의 길고 짧은 중단편이 들어있다. 이 책에는 그 어떤 통일된 형식이나 주제가 없다. 분량, 장르 모든 것이 자유롭다. 그래서 호러, 판타지, 모험, 액션, 스릴러, 본격 추리 등 장르도 다양하고 몇십 쪽짜리 단편들 사이에서 달랑 2쪽짜리 단편도 자리를 잡는다.

크게 세 개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유명한 작품들을 패러디한 중단편 세 개, 적당한 분량의 단편 세 개, 십여 쪽 안팎의 짧은 단편 여덟 개. 짧은 단편들 몇 개는 작가의 의중이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살짝 호러 느낌이 나는 콩트 형식의 <저택의 하룻밤>과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마무리를 보여주는 <요술사>는 읽을 만했다.

분량이 늘어나면서 재미도 조금씩 올라간다. 대표적인 게 <괴수의 꿈><극적인 폐막>이다. 다소 몽환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의 SF 스릴러 <괴수의 꿈>은 묘한 다크 판타지의 여운을 주고, <극적인 폐막>은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두 남녀의 엇갈린 행동이 반전에 반전을 더해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책과 수수께끼의 나날> 역시 작가의 경험을 살려 서점에서 발생할 법한 일상의 수수께끼를 코지 미스터리 형식으로 재치 있게 그려냈다.

아무래도 하이라이트는 유명한 소설을 패러디한 세 개의 중단편들이다. 역시 그중에서 표제작인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가 군계일학이다. 기발한 트릭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의 명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재미있게 패러디했다. 읽는 내내 명작에 대한 향수와 추억, 본격 추리의 재미와 클로즈드 서클 만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꼈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탐정단 시리즈를 패러디한 <미래인 F>도 재밌었다. 괴인 20면상과 아케치 고고로 탐정 간의 불꽃튀는 지략 대결과 쫓고 쫓기는 모험 활극이 볼만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선로 나라의 앨리스> 역시 기묘한 열차를 타고 이상한 나라로 짜릿한 여행을 하는 재미난 판타지 모험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읽어보니 확실히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가는 선하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강렬하거나 자극적인 부분이 없이도 글을 다채롭고 맛깔스럽게 잘 쓴다. 예전에 읽은 <작가 소설>처럼...그나저나 학생 아리스 시리즈와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소식이 없는지...<여왕국의 성>이 마지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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